Q.
드라마 ‘모범택시’ 같은 일이 현실에서 가능해진다면?
드라마에서는 법의 사각지대에 있는 피해자들을 대신해서
가해자에게 직접적으로 응징하잖아요.
보면서 통쾌하긴 한데, 한편으론 현실에서 일어난다면
과연 좋을까요, 아니면 더 위험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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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드라마에서는 법의 사각지대에 있는 피해자들을 대신해서
가해자에게 직접적으로 응징하잖아요.
보면서 통쾌하긴 한데, 한편으론 현실에서 일어난다면
과연 좋을까요, 아니면 더 위험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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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모범택시를 보며 통쾌함을 느끼는 건 아주 자연스러운 반응입니다. 법의 사각지대에서 고통받는 피해자들이 있고, 가해자는 처벌받지 않는 현실을 우리는 뉴스로도 자주 접하니까요. 그런 상황에서 누군가 대신 나서서 “정의 구현”을 해준다는 설정은 감정적으로 큰 위안을 줍니다. 하지만 그 장면을 현실로 옮겨놓고 생각해 보면, 이야기는 훨씬 복잡해집니다.
먼저 왜 통쾌하게 느껴지는지부터 짚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건 사람들이 폭력을 좋아해서가 아니라, 제도가 제 역할을 하지 못했을 때의 분노와 좌절이 누적돼 있기 때문입니다. 피해자는 이미 한 번 무너졌는데, 수사 지연·증거 부족·솜방망이 처벌로 또다시 좌절을 겪습니다. 그 공백을 드라마 속 ‘사적 응징’이 대신 채워주니, 시청자는 대리 만족을 느끼게 되는 거죠.
하지만 현실에서 이런 방식이 실제로 작동한다면, 위험성이 훨씬 더 큽니다. 가장 큰 문제는 기준입니다. 누가 피해자인지, 누가 가해자인지, 어느 정도까지가 ‘응징’인지에 대한 판단을 누가 내릴까요? 법은 느리고 답답해 보여도, 최소한 증거·절차·방어권이라는 장치를 통해 오판을 줄이려 합니다. 사적 응징은 이 장치가 없기 때문에, 한 번 잘못되면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낳을 수 있습니다.
또 하나의 위험은 폭력의 정당화입니다. “저 사람은 나쁜 사람이니까 당해도 된다”는 논리가 사회에 퍼지면, 정의의 기준은 점점 흐려집니다. 오늘은 범죄자, 내일은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이 표적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사회는 정의를 회복하는 게 아니라, 불신과 공포가 일상화된 공간으로 바뀌게 됩니다.
그렇다고 해서 드라마가 던지는 질문이 무의미한 건 아닙니다. 오히려 중요한 메시지는 여기에 있습니다. “왜 사람들은 이런 이야기에 열광하는가?”라는 질문 말이죠. 이는 법과 제도가 피해자의 회복과 보호에 충분히 응답하지 못하고 있다는 신호이기도 합니다. 통쾌함의 근원은 사적 복수가 아니라, 공적 시스템에 대한 실망입니다.
그래서 현실적인 답은 이 둘 중 하나를 고르는 게 아닙니다. 사적 응징이 답도 아니고, “법이 있으니 참고 기다려라”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진짜로 고민해야 할 건, 피해자가 끝까지 보호받고, 가해자가 책임을 회피하지 못하는 제도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입니다.
모범택시가 통쾌한 이유는, 우리가 그런 세상을 원해서가 아니라, 지금의 세상이 충분히 정의롭지 않다고 느끼기 때문일 겁니다. 그 감정은 위험하지 않습니다. 다만 그 해법이 폭력이어서는 안 된다는 점만은, 현실에서는 분명히 구분할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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