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통 지식정보공유

알송달송

ChevronLeft

5,000

  • 대천사장천상의복숭아

    감사알 지급률  88%DotDotEye 40

Q.

니체의 "도덕의 계보", "신은 죽었다" 등의 의미에서 볼 수 있는 계급화 된 도덕의 입장차와 절대성(당위성)의 함정에 대한 진지한 고찰을 해보면 어떨까요?

니체는 "도덕의 계보"에서 '주인의 도덕'과 '노예의 도덕' 입장에서 '좋고 나쁨'을 구분하였습니다.


주인의 도덕 입장에서 "좋음"은 '강인함, 독립성, 긍정성'이고 "나쁨"은 '의존과 연약함, 수동적'으로 구분하였고

노예의 도덕 입장에서 "좋음"은 '선량함과 겸손함'이고 "나쁨"은 '독단과 허세'로 구분했습니다.


또한 니체는 그 유명한 어록으로, "신은 죽었다"라는 말로 진리를 자신들의 입장에서 절대적으로 규정 짓는 종교나 기타 독단과 편견에 의해 한정적 세계관과 정체성으로 형성된 궁극의 진리로서 "도그마"를 경계하고 주인의 도덕에서 좋음과 노예의 입장에서의 좋음이 공존하며 공생할 수 있는 '좋음'으로 그 균형과 조화를 잘 유지해야 함부로 궁극의 진리로 규정하여 절대화 시키는 오류를 범하지 않는다는 흐름으로 생각하게 됩니다.


여기서 실존주의 철학에서 르상티망 (ressentiment) 즉 "원한, 복수"가 도덕이 생기게 되는 근원으로 보았다는 점 또한 특이합니다.


이러한 니체의 주장에서 보면, 특정 종교에서 선과 악의 흑백논리적 이분법으로 형성된 절대적 진리와 기독교적 가치로서 예수의 "사랑, 봉사, 용서"로 모든 것을 보듬어야 함에 대한 모순은, 위에서 주장한 주인의 도덕 입장과 노예의 도덕 입장의 좋음과 나쁨을 동시에 조화롭게 인지하여, 현재의 시대와 흐름에 걸맞게 "인지적 지체"가 일어나지 않도록 극복하여 체계화 하고 개선해 나가야 함을 현재의 상황에서 인류는 배울 수 있음을 의미한다고 생각합니다.


종교의 전통과 정통성 만으로 현세와 지역과 민족의 차이와 시간의 흐름으로 변화된 가치와 상황에 대한 인지적 지체 차이를 겪지 않는 흐름으로 철학, 종교로서 광의의 인문학과 과학이 서로 공생적 공존과 조화로운 인지를 해나가는 흐름이야말로 신인류로 나아가는 인류가 갈등과 분란을 극복하며 한 차원 더 나아질 수 있는 발전적 면모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여러분들은 현재의 고도로 발전한 세상에서 입장이 다르다고 무조건적 편가르기를 통하여 적대시 하는 정치, 종교, 지역색, 기득권과 양극화적 생태 등의 본질적 문제점들을 어떻게 타파할 수 있다고 생각들 하시나요?


인공지능은 참고만 하시고, 자신의 순수한 생각을 밝혀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9,000

댓글

  • 알돌이 님이 감사의 마음으로 천상의복숭아님께 0알을 증정했어요!

  • 알돌이 님이 감사의 마음으로 천상의복숭아님께 0알을 증정했어요!

  • 알돌이님이 천상의복숭아님의 질문을 질문 꼭대기로 올렸어요!

1,500
  • 알천사량첸

    답변 채택률  18%DotDotEye 8

안녕하세요!


저는 사실 평소에 종교,사회,정치 등에 크게 관심이 없습니다.

관심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고 항상 느끼면서도 막상 크게 호기심이 생기지 않아 멀리하곤 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올려주신 질문을 쭉 읽어 보았을 때, 전문성 있는 대답을 하기는 어려울 것 같지만 읽은 후에 든 제 생각을 조금 적어보겠습니다.


현재의 고도로 발전한 세상에서 입장이 다르다고 무조건적 편가르기를 통하여 적대시 하는 정치,종교,지역색,기득권과 양극화적 생태 등의 본질 적 문제점들을 타파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이해' 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경쟁 사회에서 살고 있고 어릴 때 부터 경쟁을 강요받는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자라다 보니 상대방을 항상 이겨야 하는 존재라고 인식하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 인 것 같습니다. 이러한 인식을 우선적으로 바꿔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상대방을 이겨야 할 존재가 아니라 이해하고 함께 나아가야하는 존재로 인식하는 것이 첫 출발이 아닐까 싶습니다.


정치·종교·지역·계층 갈등은 사실 가치의 차이보다도 정보의 단절과 불신에서 커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단일한 진실을 강요하기보다 서로의 맥락과 두려움을 설명할 수 있는 공론의 장을 넓히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동시에, 감정적 선동보다 사실과 근거에 기반한 토론 문화, 알고리즘 편향을 완화하는 미디어 환경 역시 병행 되어야 하는 부분입니다.


결국 서로의 다름을 '이해'하고 '공존해 살아가가 위해 노력하는 태도'가 질문 해주신 문제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방안이 아닐까? 하는 생각으로 글을 마칩니다.



감사합니다

30

본문 601

1,500
  • 알천사채과장

    답변 채택률  19%DotDotEye 7

저는 “편가르기”가 심해지는 이유가, 사람들이 진짜로 악해서라기보다는 각자 불안이 커져서라고 봐요. 불안할수록 사람은 복잡한 얘기 싫어지고, 빨리 결론 내리고 싶어지잖아요. 그때 제일 쉬운 결론이 “쟤네가 문제다” 이런 식의 구분이고요. 정치든 종교든 지역이든, 결국은 상대를 이해해서 내 세계를 넓히는 것보다 상대를 악으로 규정해서 내 세계를 고정하는 게 훨씬 편하니까요.


그래서 타파 방법도 거창한 구호보다 구조를 바꾸는 쪽이 더 현실적인 것 같아요. 첫째는 “같은 목표”를 일부러 만들어야 합니다. 의견은 달라도 공동의 문제는 있거든요. 예를 들면 아이 키우는 부담, 집값, 의료, 안전 같은 건 진영이 달라도 다들 피부로 느끼잖아요. 이런 의제를 “누가 이기냐”가 아니라 “어떻게 줄이냐”로 프레임을 바꾸면, 적대감이 조금 줄어드는 것 같아요.


둘째는 ‘상대의 말’을 끝까지 들어주는 문화가 아니라, 최소한 “상대가 왜 그렇게 말하는지”를 요약해주는 문화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토론을 보면 다들 반박부터 하거든요. 근데 상대 입장을 제대로 요약할 수 있을 정도로 이해한 다음에 반박하는 규칙만 생겨도, 막무가내로 악마화하는 속도가 확 느려져요. 이거 생각보다 효과 큽니다. 요약을 못하면 반박도 못하게 하는 거죠.


셋째는 기득권·양극화 같은 구조 문제를 ‘도덕 문제’로만 몰아가지 않는 게 중요하다고 봐요. 가난하면 게을러서, 부자면 탐욕이라서… 이렇게 가면 끝이 없어요. 사람 성격 탓으로 가면 서로 미워만 하게 되니까요. 제도, 세금, 교육, 노동시장 같은 구조로 다시 끌고 와야 싸움이 덜 감정적이 됩니다.


그리고 니체 얘기로 다시 돌아가면, 저는 주인의 도덕이든 노예의 도덕이든 한쪽만 절대화되는 순간 문제가 생긴다고 생각해요. 강인함만 추구하면 약자를 짓밟고, 겸손과 선량함만 절대화하면 ‘선한 척’이 무기가 되면서 르상티망이 쌓이죠. 결국 균형이 필요한데, 그 균형을 개인의 인격에만 맡기면 너무 어렵고, 그래서 사회 시스템이 그 균형을 강제로라도 만들어줘야 하는 것 같아요.


즉, 편가르기를 “사람의 나쁨”으로만 보지 말고, 불안과 구조가 만드는 자동반응으로 보고, 공통의 문제를 중심에 두고, 상대를 악으로 규정하기 전에 ‘요약부터’ 하게 만들고, 도덕 싸움이 아니라 제도 싸움으로 끌고 오는 것. 이 세 가지가 현실적으로 가장 효과가 있지 않나 싶습니다.

28

본문 886

0
  • 알천사알통 AI

    답변 채택률  24%DotDotEye 7

니체의 철학은 도덕과 가치의 본질에 대한 심오한 고찰을 제공합니다. 그는 전통적인 도덕 체계를 비판하며, '주인의 도덕'과 '노예의 도덕'이라는 두 가지 대조적인 도덕 관념을 제시했습니다. 주인의 도덕은 강인함, 독립성, 긍정성을 중시하며, 이러한 가치를 지닌 자들은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이끕니다. 반면, 노예의 도덕은 선량함과 겸손함을 강조하며, 그들은 주로 외부 환경에 의해 규정된 가치에 의존합니다.

니체의 "신은 죽었다"라는 선언은 기존의 절대적 진리를 재고하고, 인간이 스스로의 가치와 의미를 창조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이는 종교적 도그마나 고정된 진리에 대한 경계를 넘어서, 인간이 더 자유롭고 창의적인 방식으로 자신의 삶을 재구성할 필요성을 시사합니다.

현대 사회에서는 이러한 철학적 통찰이 더욱 중요합니다. 정치, 종교, 지역적 차이로 인한 갈등은 여전히 존재하며, 이는 서로 다른 가치를 조화롭게 이해하지 못하는 데서 비롯됩니다. 인류가 이러한 갈등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가치와 관점들이 공존할 수 있는 포용적 사고가 필요합니다. 이는 교육과 대화, 그리고 상호 이해를 통해 가능할 것입니다.

또한, 인공지능과 같은 기술의 발전은 이러한 문제 해결에 기여할 수 있는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기술은 객관적인 데이터를 통해 인간의 편견과 고정관념을 극복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인간의 의지와 철학적 성찰에 기반해야 합니다. 우리는 서로 다른 가치 체계를 이해하고 존중하며, 이를 바탕으로 더 나은 사회를 만들어 나가야 합니다.

결국, 현대 사회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각자가 자신만의 생각을 가지고 있되, 다른 사람의 관점을 존중하고 수용할 수 있는 열린 마음이 필요합니다. 이는 진정한 발전과 평화로 나아가는 길이 될 것입니다.

23

본문 6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