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고와 조언의 차이는 단어 분석적 측면에서 분명히 있습니다.
그러나 현실에서 그것을 하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이 충고와 조언의 차이를 명쾌하게 기준 제시하며 분류하여 하는 경우가 얼마나 될까요? 하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의 '동상이몽'이 크고 근본적 생각의 차이나 범위가 다른 경우에는, 내가 한 조언이 충고나 그보다 더 큰 악의로 변질되어 나의 귀를 통해 뇌와 의식에 극한 독이 되어 버릴 수도 있는 것이 아닐까요?
결국은 충고와 조언을 하는 사람의 입장과 받는 사람의 입장, 그리고 그것을 하게 되는 '상황'과 그런 상황이 발생하는 '기업'이나 '단체' 내지는 사람들의 관계성 등에 형성되어 있는 암묵적 분위기나 여러가지 다양한 상황이 혼재되면서 흘러갈 수 밖에 없는 '생태' 등을 같이 생각해봐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다면 충고와 조언을 하게 되는 근거로 제시하신 질문이나 답변을 하는 글을 '인공지능' 복붙으로만 일관한다는 점에서, 회원으로서 "지양"해야 할 점과 "지향"해야 할 점을 몰라서 저렇게 안하무인 격으로 하고 있을까? 하는 생각부터 하게 됩니다.
몰라서 그렇게 인공지능에만 의존하여 한다면, 알아 듣게 쪽지나 댓글로 알려주는 글에 반응하는 것이 보통 상식적인 흐름이겠지요. 그러나 그런 과정을 받아들이지 않는 경우라면 알면서도 모른 척을 한다는 의미일 수 있고, 아예 그런 판단 상황을 인지하지 못하고 그럴 수도 있겠지만 이 경우는 가능성이 크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이런 혼재된 상황에서 지속적으로 인공지능 복붙만을 일관하는 그 사람의 개인 사정은 무엇일까? 하는 생각도 하게 되면 오지랖일까 싶기도 하고요. 뭐 그런 것 까지 생각해줘야 할 것은 아니겠지만 그 사람이 그렇게 해서 실질적으로 얻을 수 있는 이득이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게 됩니다.
그렇다면 전체 분위기 형성을 위해서 여러가지 비교와 상징성을 부여한 깨달음의 글 등으로 위트를 섞어서 뭔가 전체 분위기를 이끌면서 같이할 수 있는 방법들을 찾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보고 이런 저런 실험적 방법을 활용해 보기도 합니다.
무엇이든 명쾌하게 구분 지어 해답이 나올 수 있다면 그것만큼 좋은 것은 없겠지만 세상사가 그렇지 못한 경우가 다반사라고 생각합니다.
다름이 혼재하는 이유는 그런 다양성으로 존재할 수 밖에 없는 인간의 생태이고, 순결하고 무결점이 될 수 없다면 그런 상황에 인접하지만 혼재와 다양성을 같이 하면서도 질서를 유지할 수 있는 대세적 분위기를 만들어갈 수 있는 분위기와 지배적이지만 기분 나쁘지 않는 무게감 있는 공기를 형성하는데 같이하고자 하는 마음이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런 같이 하고자 하는 마음이 인간으로서의 개성과 특이한 성정 내지는 역할을 주도하고자 하는 인간 본질적 측면까지 가세하게 되어 복잡한 이해 관계적 구조를 형성하기도 하는 경우가 대단히 많기에 인간이 세명만 모여도 정치적이 된다는 말까지 생긴 것이 아닌가 합니다. ㅎㅎㅎ
따라서 핵심은, 저 사람이 왜 굳이 저렇게까지 할까? 라는 의문에서 출발하여 가장 큰 범위인 알통의 존재 범위와 진입 장벽 등의 다양하고 혼재된 상황에서 주된 질서와 압도할 수 있는 분위기까지 같이 생각하면서 "역동적인 균형감"을 맞추어가는 그런 과정에서 사람과 사람이 연계되고 관계되어지는 세련되고 안정적인 '인정'과 '상생'에 대한 화두 등의 다양한 접근성과 이해하려는 노력 등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때문에 그런 주된 분위기 형성은 개인의 입장에서만 진실을 가리기 어려운 상대적이고 미지수인 변수와 경우의 수가 많을 수 있기 때문에, 그런 여부를 극단적으로 생각하기 보다는, 현재의 상황에 대하여 크고 넓은 이해와 역동적인 균형감을 가지고 전체 상황을 볼 수 있는 여유도 필요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지만 개인적으로는 그게 잘 안되기에 나 자신도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