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삼은 기후조건만 맞으면 세계 여러나라에서 생산 재배되는데 유독 한국의 인삼이 인기가 많은 것은 무엇때문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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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천사봄이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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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여러곳에서 자라기는 하지만 한국에서만 자라는 토종인삼인, 약효가 뛰어난 "고려인삼"이 유명하다. 우리나라에서 산출되는 인삼을 특별히 "고려"인삼이라고 하는 것은 고려시대부터 인삼을 인공재배를 하였으며 중국이나 일본에서는 조선 왕조가 들어선 이후에도 우리나라를 "고려"라고 부르곤 하였던 것이 유래로, 따라서 조선 인삼도 고려 인삼이라고 불렸다.
고려인삼은 제주도를 제외한 전국에서 재배할 수 있다. 고려인삼의 명성은 옛부터 중국에서는 천금을 주고도 못 살 정도였다고, 일본에서는 고려인삼 하면 무조건 만병통치약(...)이라고 믿는 사람도 있었다고 하며(신 구미호와 사무라이 참프루에도 나온다.), "인삼을 먹고 병을 고쳤는데 인삼 값을 갚지 못해 목숨을 끊었다"라는 이야기가 돌 정도로 이름난 작물이었다. 애초에 자살할거면 왜 인삼 산거냐고 이 명성은 일본에 왔던 유럽인에게도 알려지는데, 한 유럽인은 집에 인삼을 보내면서 "이것은 같은 무게의 은만큼이나 값어치가 있으며 유통되는 모든 것은 전부 덴노의 소유다"라고 쓴 편지를 보냈다.
베트남의 경우, 고려인삼을 황제가 정력제와 신하들 하사품으로 애용했다고 한다.[1] 그래서인지 오래전부터 고려인삼은 가짜가 판을 쳤다. 18~19세기 청나라의 학자 옹방강이 조선의 김정희에게 보낸 편지에 "고려인삼을 잘 받았습니다. 수도(베이징)에서 고려인삼이라는 것은 가짜가 많으니 보낼 때 수십뿌리 보내주시길"이라고 쓰여져 있을 정도.
고려인삼은 단순히 명품이 아니라 조선 자체 내에서 생산되는 물품으로는 가히 조선 경제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작물이었다[2]. 일본은 고려인삼으로 은이 상당히 유출되자 1710년 경 교호 개혁을 추진할 때 이를 줄여보려고 에도막부가 인삼 종자 확보 및 재배에 열을 올려 결국 성공했다. 기후가 다른 탓인지 약효가 고려인삼만 못해서 얼마만큼은 계속 수입해야 했지만, 확실히 은의 유출량이 줄었다니 그만큼 중요한 작물이었던 셈(다만 은 유출 감소는 일본이 청과의 무역 직거래를 터버린 탓이 더 크다). 이어 1750년대에 들어서면 미국의 백삼이 중국에 들어오면서 다시 한 번 조선의 은 수입이 줄어들지만, 19세기에는 조선 사람들이 홍삼 가공업을 흥성시키면서 다시 무역 수지가 회복된다. 이렇게 그 수출 구조의 변화만으로 조선 후기 경제를 뒤흔들었다고 할 만한 작물은 인삼이 거의 유일하다.
이렇게 조선에서 나오는 생산품 중에 "조선 특산품"으로서 어딜 가나 가치를 인정받은 작물이었기 때문에, 중국에서 지참금으로 쓸 은이 부족하면 인삼을 가져가서 팔도록 해온 역사도 오래되었다. 조공 과정에서 이루어졌다는 무역은 대개 베이징에 간 조선 사신들이 인삼을 팔고 책 등을 구입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위키백과에서 발췌했어요~ 품질관리를 잘한다고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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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천사깜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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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여러 곳에서 자라기는 하지만 한국에서 자라는 토종인삼으로 약효가 뛰어난 "고려인삼"이 유명하다.
한국산 삼의 명성은 이미 삼국시대에 당나라에까지 널리 알려질 정도였는데, 이 당시에는 고려삼, 백제삼, 신라삼(나삼)으로 구분했다고 한다. 통일신라대에는 중국이나 일본을 오가는 사신이 나삼을 지참했고 인기가 많았다는 사실이 삼국사기[2]나 매신라물해[3] 등 문서에 기록되었다. 고려 건국 후 오랜 세월이 지나면서 고려인삼으로 명칭이 굳어져 현대까지 이어진다. 한반도에서 산출되는 인삼을 조선도 한국도 아니라 특별히 "고려"인삼이라고 하는 것은 고려시대부터 인삼을 인공재배하였으며 중국이나 일본에서는 조선 왕조가 들어선 이후에도 우리나라를 "고려"라고 부르곤 하였던 것이 유래로, 따라서 조선 인삼도 고려 인삼이라고 불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