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통 지식정보공유

알송달송

ChevronLeft

250

  • 나비천사진선미

    감사알 지급률  97%DotDotEye 107

Q.

주역 알고싶어요?

주역
간단하고 명료하게
그러나 통찰력있고 확실하게
속 시원히 좀 알려주세요?
정말 궁금합니다
0

댓글

 질문자의 선택

0
  • 알천사봄이오면

    답변 채택률  37%DotDotEye 8

주역이란 ?
사람들은 주역에 대하여 관심이 많다. 흥미있어 한다. 단순한 흥미 차원이 아니다. 온 인류가 주역에 대하여 열광하고 있다고 말한다면 과장된 표현일까. 주역이 이처럼 매력을 끄는 이유는 무엇일까. 주역에는 신비로움으로 가득차 있다. 그 신비함이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고 볼 수 있다. 주역이 사람을 매료시킬 수 있는 것은 주역의 진실됨과 아름다움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주역의 특질들이 과연 사실인가를 확인해 보자. 주역 속에 살아 숨쉬는 비밀을 캐 보도록 하자. 주역은 나의 마음도 사로잡을 수 있을까. 분명 그럴 수 있다고 본다. 지금부터 전개될 주역강좌를 통하여 주역에 대한 진수를 맛보도록 하자. 음양학의 아름다움에 흠뻑 빠져 보도록 하자. 단순한 이론 차원이 아니다. 주역은 실생활과 밀접히 연관되어 있는 학문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아름다움의 실체를 감상하고 일체가 되어 보도록 해보자. 주역의 신비를 찾아서 주역 여행을 떠나 보기로 하자.

주(周)는 두루주(周) 이니 세상의 모든 것에 대하여 두루두루 살피고 관여한다는 것이다. 역(易)은 바뀐다는 뜻으로 바뀐다는 것은 변화를 의미한다. 변화라는 것은 시간과 공간 속에 있다. 그러나 여기서의 역(易)은 주로 시간을 의미한다. 그렇게 본다면, 주는 공간적이고 역은 시간적이다. 따라서 주역은 시공(時空)을 말하며 시공은 또한 우주(宇宙)를 뜻한다. 주역은 이처럼 우주를 말하고 있다. 우주라는 시간과 공간속에 있으면서 삼라 만상을 모두 포함하고 있다.
우주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일까. 우주의 핵심자리는 바로 현재이다. 현재가 중요하지만 현재 중에서도 바로 내가 서있는 이 자리가 중요하다. 나라는 존재 그 자체가 가장 중요하다. 따라서 주역이란 내가 어디에 존재하고 있는가에 대한 철학이요 학문체계이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나아갈 바를 밝힌다. 이것을 물리학에서는 위상(phace)이라고 한다. 위상을 알게되면 내가 처해있는 자리뿐 아니라 미래와 과거 현시점의 다른 지점에 대한 일들을 알아낼 수 있다. 주역의 묘미는 여기에 있다. 즉 이세상 일을 자처럼 재어서 알 수 있다는 것이다.
미래를 알지 못하면 행하지 말라고 하였다. 알지 못하면서 마구 행동하는 것은 천방지축 어린아이와 같기 때문에 실패하기 마련이다. 알지 못하면 행하지도 말아야 한다.

그렇다면 무엇을 알아야 할까. 꼭 알아야 할 것은 무엇일까.

- 현재를 정확히 알아야 한다.

- 미래를 알아야 한다.

- 미래의 변화를 알아야 한다.

- 미래의 길흉화복을 알아야 한다.

- 어떻게 하면 올바른가를 알아야 한다.

- 잘못하면 안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 해야 할 때를 알아야 한다.

- 하면 안 되는 그 때를 알아야 한다.

- 해야 할 일을 알아야 한다.

- 해서는 안될 일들을 알아야 한다.

이에 대한 정확하고 확실한 좌표를 제시한다.

주역(周易)을 통하여 이에 대한 답변을 얻을 수 있다. 이 모든 것에 대한 확신과 자기 성찰을 위한 길을 제시하고 길을 가고자 함이다. 그러니 주역은 모든 이의 스승이 될 것이고 모든 이의 지표요 생활 철학이요 미래상인 것이다. 우리는 이 강좌를 통해 주역을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주역을 생활화하고 주역을 자신의 일부로서 주역적인 삶 자체가 될 수 있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

주(周)는 공간이라 하였고, 역(易)은 변화라고 말하였다.

그런데 이처럼 주역은 무엇이다 어떠어떠하다.... 라고 정의하는 것 자체가 주역에는 어울리지 않는다. 변화의 원리란 바뀌는 것이기 때문에 갑(甲)은 을(乙)이다 라고 말할 때 이것이 변화하여 갑이 병(丙)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주역이 무엇인가에 대한 설명이 얼마나 정의 내리기 힘든가를 생각해 보자. 주역에 대한 관점을 자신에게 합당한대로 끌어다 자기에 맞추어 정의 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주역은 모든 것에 대한 학문 체계이기 때문에 누구나 자기에 어울리는 나름대로의 정의를 가능하게 해 준다.
예컨데 주역은 정치학이다. 주역은 미래학이다. 주역은 의학이다. 주역은 상수(象數)학이다. 주역은 음양(陰陽)학이다.... 등등의 여러 각도에서 정의 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정의를 어떻게 내리건 전혀 이상할 것이 없다.
예컨데 주역은 음양학이다. 역(易)자를 보아라 易자는 일(日) 월(月)이 모여서 역자를 이루지 아니했는가. 주역 이야말로 음양의 묘리를 멋들어지게 설명한 학문이다. 라고 말할 수 있다.
더욱 직설적으로 보자. 역(易)이란 이치를 통달하게 되면 세상일을 하나로 관통할 수 있어서 역이란 쉬울이(易)이다. 그렇다면 주역은 쉽다. 쉬운 학문이다 라고 말할 수 있다. 물론 이치를 아니 세상이 쉬워지겠지, 당연한 이치이다. 易이란 변화의 원리이다. 변할이 이니까.....
뿐만 아니라 주역에는 정말로 다양한 정의를 내릴 수 있어서 그야말로 편리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모든 것을 뒤로하더라도 주역은 점서이다. 미리 알 수 있는 예언의 기능을 가진다.
어디 그뿐인가. 귀신을 부리고 귀신을 통할 수 있으니 술서이다. 이처럼 역은 참으로 편리하고 다양함을 알 수 있다. 주역은 사용하는 사람에 따라서 얼마든지 그 활용이 다양하게 달라짐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주역의 활용은 얼마나 다양한 것인가. 그것은 사용하는 사람과 직결되어 있다. 소인이 사용하면 소인의 역이요 대인이 사용하면 대인의 역이 된다. 제왕이 사용하면 제왕의 역이요 장군이 사용하면 병법이 된다.
조선시대에 유자광이란 사람은 재미있다. 점을 치면 그 결과가 어쩌면 그렇게도 거꾸로 나오게 되는지, 훗날에도 이것이 회자될 정도이니 참으로 신비한 것이 역 아닌가.
혹 일본 사람들 사이에는 맞는 것도 역이요 맞지 않는 것도 역이라는 말이 있음을 상기해보자. 참으로 재미있는 표현이다. 맞는 것도 역이요 맞지 않는 것도 역이므로 주역이란 맞는 것이다. 주변에도 "점 그까짓거 맞지않아... " 하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그러나 잘 모르시는 말씀, 역이 맞지 않으면 어찌 역이겠는가. 맞지 않는다는 말이 얼마나 창피한지 모르는 말이다.
역이 맞지 않는다는 말은 정말로 의미있는 말이다. 주역이 틀리다면 점이란 정말 필요 없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을 자신에게 맞추어 자신이 활용하는 것이다.
화살이 시위를 떠난다. 활과 화살은 둘이지만 하나인 것이다. 화살이 과녁을 맞추는 것은 확률이다. 그러나 맞는가 안 맞는가는 동전의 이면과 같다. 맞추는 것이 한쪽면 이라면 다른 면은 맞지 않는 것이다. 화살은 과녘에 맞는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그러나 궁사의 실력은 모든 사람에게 다른 것이다. 명궁이면 백발백중 할 수 있는 것이므로 과녁을 맞추지 못하였다해서 활은 맞지 않는 것이다 라는 관점을 갖고 있어서는 안된다.
활은 살상용으로 확실히 위험한 무기이다. 그것만은 확실하다. 현대에 와서 화살은 총알로 바뀌었다. 그렇다 총알에 맞으면 죽을 수 있다. 그것이 답이다. 역은 확실히 이 세상을 꿰뚫고 있는 것이다. 역을 통해 이 세상을 종횡으로 파악 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도구인 것이다. 그것만은 확실하다.
주역을 공부하는 사람이면 매화역수나 하락이수에 대한 매력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주역을 공부하는 학자들은 어찌된 영문인지 이러한 점술적인 요소를 무시하거나 등한히 하는 풍조가 있다. 잘못된 편견이라고 볼 수 있다. 매화역수나 하락이수의 중요성을 잘 인정하지 않는 사람은 본말을 잘 모르는 사람으로 자신의 주역에 대한 관점을 그야말로 수정해야 할지도 모른다. 주역에 대한 시각이 부분적인 것으로 전체 주역을 통괄적으로 이해하는 데에는 부족하다고 보아야 한다.
미리 아는 것을 생각해 보자. 미리 아는 것이야말로 주역의 가장 매력적인 요소이다. 미리 알아야 대처할 수 있는 것 아닌가. 미리 알아야 할 것중의 대표적인 것으로 일기예보를 생각하자. 요즘에 와서는 과학이 발달하였기 때문에 눈이 오거나 비가 올 것을 상당히 적중시키지만 이전에야 어디 그랬겠는가. 그렇다면 주역으로도 일기예보를 할 수 있어야 할 것이 아닌가. 주역을 통하여 모든 것을 미리 안다고 하였으니 그렇다면 자연의 기초적인 변화인 날씨를 주역으로 점을 처서 알아내어라. 이러한 요청을 한다면 얼마나 난감할 것인가.
그렇지만 걱정할 필요는 없다. 육효로 얼마든지 가능하기 때문이다. 일기 정도를 알아내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렇다면 10사람쯤이 동시에 일기점을 치더라도 똑같이 맞추는가.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일기를 점친다는 것 자체가 보편적임에서 벗어나는 것이 아닌가. 그럴지도 모른다. 그러나 적어도 일기점을 맞추는 사람이라면 열번을 점쳐도 열번을 적중시킨다. 그렇다면 된 것 아닌가. 사실 웬만한 사람이면 일기점을 적중시킬 수 있다. 이 사실을 확대해 말하자면 자신의 미래나 길흉화복을 점칠 때 대부분의 사람이 맞춘다고 보아야 한다. 그러니 점친다는 것이 의미 있다. 만일 그렇지 못하다면 점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주역이 점치는 도구로 막강하지만 처음부터 점을 처야겠다는 관점에서 시작하지는 말기 바란다. 우선은 세상 돌아가는 원리에 대하여 공부한다. 세상 즉 우주의 돌아가는 이치를 알 때 우리는 역에 대해 매료하게 된다. 역의 이치를 공부하며 그러다 보면 자연히 점도 칠 수 있기 때문이다.
주역이 단순한 점서라고 하더라도 주역이란 체계는 훌륭하다. 주역이야말로 세상을 제대로 점칠 수 있는 확실한 도구라고 하니 이처럼 훌륭한 것이 또 어디 있겠는가. 점쳐서 알 수 있다면 점이야말로 편리하고 소용이 닿는 존재 아닐까.
점을 너무 천시하여서는 안 된다. 점을 천시하는 사람은 경솔하기 때문에 오히려 실패하기 쉬운 인생을 산다. 미래에 대한 모든 것은 예측에 달려있다고 보아야 한다. 혹자는 말한다. "삶이란 의사결정의 연속이다." 그렇다면 예측하지 못하는 의사결정이란 무모한 것 아닐까. 얼마나 잘 예측하는가. 그것은 개인의 장래이며 기업의 미래이며 국가의 백년 천년을 위해 절대적인 명제이다.
미리 알지 못하고 행동하는 우를 범하지 말기를 바란다. 주역이야말로 인간이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한 모습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주역은 자기 자신이 여러 방법으로 직접 점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누구에게 묻지 않아도 자문자답하면서 미래를 연구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스스로 확인하고 공부할 수 있는 강점이 있기 때문에 다른 어느것 보다도 자신의 가장 훌륭한 동반자요 변하지 않는 친구라고 볼 수 있다. 주역만큼 좋은 것이 이 세상에 어디 있을까. 라고 단언 할 수 있다. 주역은 확실한 지식체계로 자신의 지혜를 넓혀주는 최고이며 최선의 도구인 것이다.
주역(周易)은 상수(象數)학이다.
주역에 대한 정의가 얼마나 다양한가를 상수(象數)학적인 관점에서 보기로 하자.
세상일이 기쁠 수만은 없다. 언제나 좋을 수 있어야 할텐데 그렇지 못하다. 어제 좋았던 일이지만 오늘은 나쁘게 보인다. 어제의 동지가 내일의 적으로 바뀐다. 세상은 변화하고 또 변하는 것이다. 이런 것들을 보고 복잡하다고 말할 것인가.
변하는 원리. 주역이야말로 변화의 원리이다. 그렇다면 변화 속에서 변화를 알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우리는 주역을 통하여 세상이 변하면 어떻게 될 것인가를 알아야한다. 주역을 구규(矩規)로 삼아 변화하고 바뀌는 가운데에서 묘리(妙理)를 찾는다. 때를 따라 변역(變易)하게되고 이것을 보아서 도(道)를 쫓는 것이라 하겠다.
주역을 상수학(象數學) 이라고 말하고자 한다면, 상(象)은 형상(形象)으로 세상에 보이는 삼라만상을 말한다. 그러나 이 형상 속에는 수(數)가 있으니 이 수를 살핀다는 것이다. 상(象) 속에는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말이 무슨 말이겠는가.
바람이 부는 것이 상(象)이지만 바람이 부는 때가 있으니 이것이 수(數)가되며 불어대는 방향이 있으니 이것도 수(數)이다. 어느 날 모월모시 누군가가 와서 문을 두두리니 이것이 또한 수(數)이다. 문 두두리는 것이 어째서 수인가. 우선은 두두리는 숫자가 수이고 두두리는 시간이 숫자 아닌가.
이러한 관점에서 팔괘의 형상이 역시 수이며 방향 역시 수(數)이다. 부모 자식 가족이 형상이라 한다면 그것 역시 숫자가 내포되어 있으니 모든 것이 상(象) 아닌 것이 없고 수(數) 아닌 것이 없다. 물론 이에대한 예는 수없이 많겠지만 어떻게 상수로 미래를 알 수 있었는가 그 예를 보기로 한다.
소강절 선생은 진(辰)년 12월 17일 신(申)시에 매화꽃을 보는데 두 마리의 참새가 나뭇가지에서 싸우며 땅으로 떨어지는 것을 보게되었다. 이를 보며 말하되 [내일저녁 여자가 꽃을 꺽다 정원에서 다리를 다칠 것이라 말하였다] 그것은 왜 그럴까.
무릇 움직이지 아니하는 것은 점치지 않는다고 하였다. 그러니 점이란 변화하는 가운데 조짐을 보아서 그것으로 점치는 것이다. 예컨데 조용한 마당에 참새가 돌연 싸움을 벌인 것을 말한다. 이처럼 고요한 가운데 변화가 일어나니 참새가 싸우게되는 것 역시 조용한 가운데 벌어진 변화의 모습이다. 그러나 참새가 싸우는 상(象)속에는 수(數)가 있는 것이며 상수를 아니 주역적인 변화 속에 미래를 알 수 있었던 것이다.
날의 진(辰)은 五요 월 일 수인 12 + 17의 합산을 하고 이 속에서 팔괘를 취하니 상괘인 태(兌)가되며 신시에 사건이 일어났으니 이로 하괘(下卦)를 삼아 주역팔괘를 정하니 택화혁(澤火革)이 된다. 전체수로 동효(動爻)를 삼으니 호괘(互卦)는 천풍구(天風 )인지라 이 괘를 해석하니 체(體)가 극을 당하는 것인바 태(兌)는 소녀이니 여자가 다침을 알 수 있고 호괘의 손(巽)목이 극을 당하니 다리를 상함을 알 수 있다.
세상이 변화하는 모든 이치 속에 취상을 하여 그 결과를 예측한다는 한 예시를 하였다.
이처럼 모든 변화 속에서 미래를 예측 할 수 있으니 세상의 사건들과 일어나는 조짐을 살펴서 미래를 알 수 있다 하겠다. 일을 일으키는 개업(開業)의 시점을 보아 미래를 아는 것 역시 가능하며 그래서 개업식의 날을 잡는 것 아닐까. 또한 미신 같은 음양오행을 따지고 숫자를 게산하는 원리가 모두 주역과 무관하지 않다고 하겠다.
이처럼 세상의 모습속의 숫자를 살펴는 관계를 주역에서 중요시 여기며 주역의 한 관점이 되니 이것이야말로 주역은 상수학 이라고 정의하는 한 분야일 것이다.
주역에 대한 정의는 다양하고 광범위하여 그야말로 주역의 깊이를 더해주고 있다. 주역에 대한 이해를 돈독히 하기 위해 주역의 정의를 더 밀도있게 해 보기로 하자.
주역을 공부하는 매력은 주역 자체를 생활화할 수 있고 주역을 생활 속에서 용해시킬 수 있다는 장점을 빼놓을 수 없다. 주역의 원리 속에서 변화를 살피고 차후의 일들을 예견하면서 스스로 기뻐하는 경지가 가장 큰 매력일 것이다. 상수학적인 관점에서도 변화를 느끼면서 그로부터 유추한 결과를 가지고 미래를 펼쳐 보일 수 있겠지만 관상관사(觀相觀事)야 말로 제대로 주역을 공부하여 이러한 경지에 이르게되면 그것 역시 멋진 일임에는 틀림없을 것이다. 소강절의 역수비설(易數秘說)의 경지처럼 변화를 수리로 파악하여 미래를 알 수 있겠지만 그보다 더 멋진 일은 세상자체에 스며있는 세상일들의 질서와 법칙을 이해하는 것이다.

일상 생활 속에서 어떤 사건이 일어났다고 하자. 그 일의 추후를 알고자 하면 그때마다 일일이 점을 치면 될 것이다. 산통을 흔들고 산가지를 나누며 그 속에서 미래를 물어보는 것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구태한 작위 속에는 신명이 깃들어 신통하게 알 수야 있지만 세상을 살피어 그 현상 속에서 미래를 유추하는 것이다. 현상의 기미를 파악하여 그에 대처할 수 있다면 무척 다행한 일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무슨 말인가. 한 사건이 일어난다면 그 일에 대한 주역적인 해석을 한다는 뜻이다. 예컨데 사건이 터지거나 문제가 발생한 경우 이것이 주역의 어느 괘에 해당하는가 하는 것을 살피고 해석 내린다는 것이다.
밝게 살피면 상(形象)을 보아 동효까지 알아내어야 한다. 무슨 괘에 해당하는가 또 몇째효에 해당하는 사건인가를 살피면 사건의 추이를 알 수 있다. 그리고 그 일이 그렇게 뿐이 될 수 없음을 파악할 수 있다. 처음부터 너무 어려운 용어들이 나왔지만 차차 이해하기로 하자.
자세히 말하지 않고 대충을 이야기한다면 더욱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예를 들어 설명해 보자. 노사분규는 상하가 통하지 않는 것이다. 상하가 통하지 않는 것은 위는 하늘이요 아래는 땅이므로 천지비(天地比)의 형상에 속한다. 그러니 비색(否塞)하니 막히는 것이다. 그러나 노사분규가 시작이 되는 단계이고 이의 미래를 말하라고 한다면, 초효에 해당하니 후에 천풍고(天風蠱)로 변할 것이다. 고(蠱)는 세 마리의 벌레가 피를 빠는 형상. 얼마나 고통과 어려움이 따를 것인가를 미루어 알 수 있다.
만일에 노사분규를 일으키는 장본인이라면 92효에 해당할 수도 있겠고 93효에 해당할 수도 있다. 처지나 상황에 따라 결정될 것이다. 둘째효에 해당한다고 생각된다면 천수송(天水訟)이니 마치 법정에서 판결을 기다려야 하는 죄인모양 꼴사나운 모양이 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셋째효라면 천산둔(天山遯)이니 어쨌건 빨리 자리를 피함이 좋을 것이다. 대개의 노사분규를 일으키는 핵심세력은 어떻게 될 것인가. 사실 노사분규를 일으키는 사람들은 노사분규가 주역적인 관점에서 어떻게 이해되는가. 과연 자신의 행동이 얼마나 정당한가 하는 점들은 생각해 보지 못하였으리라. 그러나 당장에 보더라도 결과는 뻔하다. 만일에 2효동이어서 천지비에서 천수송(天水訟)으로 옮아갔다면. 천수송이니 이는 송사이고 싸우는 것이지만 2효동이면 싸움에서 이기지 못한다. 이기지 못하니 자중함이 유일한 해결책이요 이긴다 해도 결국은 부끄러운 일이다. 조심해 물러나야 겨우 악운과 재난을 피할 수 있다. 싸움이나 송사가 깊어지면 불가하다. 또한 곧음이 이로우니 사리사욕으로 한다면 더욱 흉하여 패가망신 할 운명에 처하리라 하는 것은 자명하다. 노사분규가 한창 진행된다는 것은 3효동이다. 그러니 부끄러운 일이고 부끄러움이란 상하가 모두 부끄러운 일이다. 크게는 대통령으로부터 작게는 기업주나 노사쟁의의 당사자까지 모두 부끄러운 일이다.
그러나 누가 노사를 천지비로만 볼 것인가. 때에 따라서는 다른 각도에서 볼 수 있다. 만일 그러려면 심증이 있어야 한다. 노사가 지천태인가. 택화혁인가. 아니면 천수송인가 아니면 또다른 어떤 괘상인가 모든 것을 당시의 상황과 여건을 살피어 밝힐 수 있어야 한다. 제대로 보았는지는 시간이 지나면서 이를 확인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예컨데 노사분규에 직면한 사람이 자신의 처지나 예후를 시초점을 치지 않더라도 익히 알 수 있는 것이다. 마음속에서 환하게 그렇다. 이번 일은 언제쯤 끝날 것이고 결말은 어떻게 될 것이다. 이렇게 추정 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은 나아가면 자신의 운명에조차 적용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살피어 알고자 한다면 주역을 닳고 닳도록 읽어야 할 것이다. 늘 하는 말이지만 먼저 자신의 마음을 텅 비워야 한다. 한점의 부끄러움과 의혹이 없어야 밝게 비추어 알게되는 것이며 미리 대처할 수 있다. 음양 상하를 착종(錯綜)하면서 그 이치를 살핀 후에야 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관상관사 할 수 있다면 일의 기미나 일어난 일을 보아 미래를 알 수 있다면 주역을 어느 정도 알았다고 할 것이다. 이 정도 된다면 더 깊은 경지를 향해 인류의 먼 미래를 바라볼 수 있는 혜안이 열려 간다고 볼 수 있겠다. 주역을 공부한다는 것은 예를 든다면 노사분규를 주역적으로 해석함도 중요하지만 분규 자체가 있어서는 안되는 일임을 즉석에 간파하는 힘인 것이다.
생활 속에서 모르는 단어를 만나면 사전을 찾는다. 그러나 사전을 찾지 않아도, 일일이 그 뜻을 헤아리지 않아도 의사소통이 가능 한것과 같다. 주역을 공부하면 세상일을 살피는 힘이 증가하게 된다.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그것은 자신의 지혜로 가능하게 된다. 스스로 판단하는데 주역이라는 잣대가 있기 때문에 그것이 큰 힘이되고 지식이되고 지혜가되기 때문에 주역은 가치가 있다. 이 모든 것이 학문적 바탕 속에서 정교한 지식이 되고 자신에게 놀라운 힘을 부여하게 될 것이다.

http://koreawebcast.esy.es/g.htm
.
.
.


주역에 대해서 간단하게 설명할 수는 있어도 질문자님께서는 심도깊게 통찰력있는 내용을
원하셨으므로, 주역에 관한 통찰력 있는 글을 갖고왔어요. 시간내어서 한 번 읽어보세요.

24

본문 74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