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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비천사한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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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문제인대통령

문제인대통령은 어떤분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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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호천사네츄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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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문재인(文在寅, 1953년 1월 24일 ~ )은 대한민국의 제19대 대통령이다. 본관은 남평(南平)이다.

경희대학교 재학 시절 학생운동을 이끌며 박정희 유신 독재에 항거하다가 1975년 서대문구치소에 투옥됐고 대학에서 제적당했다. 출소 후에는 신체 검사도 받지 않은 상태로 군에 강제 징집되었다. 특전사를 제대한 후 복학해 다시 학생운동을 이끌며 전두환 군부 독재에 항거하다가 1980년 청량리구치소에 투옥됐으나, 옥중에서 사법시험에 합격하면서 조영식 경희대 총장의 신원보증 아래 극적으로 풀려났다. 1982년 사법연수원을 최우수 성적으로 수료했으나 학생운동 전력으로 판사 임용이 거부되자 부산으로 내려가 노무현 변호사와 합동법률사무소를 운영하며 인권변호사로 활동했다.

2003년에 참여정부의 초대 대통령비서실 민정수석을 역임했다. 2004년, 자리에서 물러나 히말라야 산맥으로 트래킹을 떠났으나, 도중에 노무현의 탄핵 소추 소식을 듣고 즉시 귀국하여 변호인단의 간사를 맡았다.2005년 다시 청와대에 들어가 대통령비서실 시민사회수석, 민정수석, 정무특보를 거쳐 참여정부 마지막 대통령비서실장을 지냈다.

문재인은 2012년 제19대 총선에서 부산 사상구에 출마하여 당선되면서 본격적으로 선출직 정치활동을 시작했다. 동년 대선 출마를 선언했으며 손학규, 김두관, 정세균 등과 겨루어 전국 순회경선 13회 전승을 거두며 민주통합당 제18대 대선 후보로 확정되어 출마하였으나 새누리당의 박근혜 후보에게 패배하였다. 2015년 2월 8일에 새정치민주연합 대표에 선출되었고, 2016년 1월까지 새로 개편된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지냈다. 대표직에서 물러난 후 제20대 총선에 출마하지 않았지만 더불어민주당 소속 후보들을 위해 지원 유세를 다녔다. 2016년 11월 박근혜 대통령 탄핵 국면 시기 상임고문으로 활동했다.

2017년 3월 10일, 박근혜가 대통령직에서 파면되어 조기 대선이 결정되자 대권에 재도전하였고, 이재명, 최성, 안희정과 겨루어 전체 표수의 과반을 얻어 결선투표 없이 2017년 4월 3일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 최종 승리하여 더불어민주당 제19대 대선 후보가 되었다. 2017년 5월 9일 치러진 대선에서 41.1%를 득표하여 24%를 득표한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를 누르고 당선되었으며, 대통령이 파면되어 치러진 궐위선거이기 때문에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당선인 결정 시간인 2017년 5월 10일 8시 9분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를 구성하지 않고 바로 제19대 대통령에 취임했다.

출처 https://ko.wikipedia.org/wiki/%EB%AC%B8%EC%9E%AC%EC%9D%B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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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비천사치우천왕

    답변 채택률  50%DotDotEye 13

문재인 대통령은 "문제있는 대통령"이라는 의미 아닌가요? 그리고 권위있는 법학자가 법치국가에서 보면 "보궐 대통령"이라고 하더군요.

쇼와 실질적인 것을 구분하지 못하는 분별력이 없으니가요. 그러니 말한 것과 실천하는 것도 맞지 않는 경우가 너무 많고...
후보 때야 대통령 되기 위해 쇼도 할 수 있겠지만, 대통령이 되면 트럼프가 북한에 대해 곧 전쟁을 일으키려는 듯이 쇼를 하는 것이 문재인 대통령 정신 차리고 친미로 돌아서라고 하는 메시지인 줄도 모르고 덥썩 미국의 요구를 그대로 수용하는 실천에서 드러났다고 봅니다.
확실히 "문제있는"에서 "ㅔ ㅇ ㅆ 느"를 빼면 "문재"가 되네요.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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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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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답변 채택률  비공개DotDotEye 11

문재인 대통령입니다.

2017년 5월 9일 치러진 제19대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된 대한민국 제19대 대통령

경남 거제에서 태어나 인권변호사,
노무현 정부의 민정수석과 비서실장,
19대 국회의원, 더불어민주당 당대표 등을 역임하였다.


■ 피난민 가정에서 출생

문재인 대통령은 1953년 1월 24일 경남 거제에서 피난민 가정(부: 故 문용형, 모: 강한옥)의 2남3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함경남도 흥남 출신인 그의 아버지 故 문용형은 한국전쟁 당시 흥남철수 때 남한으로 피난해, 거제의 피란민수용소에 정착했다. 아버지는 공무원 경력으로 거제도 포로수용소의 노무자로 일했고, 어머니는 계란행상을 하면서 겨우 생계를 이어갔다. 이후 그의 가족들은 북한 출신 피난민들이 많이 거주하던 부산 영도로 삶의 터전을 옮겼다.









■ 학창 시절

1965년 남항초등학교, 1968년 경남중학교를 졸업한 문재인은 부산 최고 명문인 경남고등학교(25회)에 수석 입학했다. 1972년에는 4년 전액 장학금을 받고 경희대 법대에 수석으로 입학했다. 대학 진학 이후에는 박정희 유신정권에 반대하는 학생운동을 했으며, 1975년 총학생회 총무부장으로 집회를 주도하다 구속, 징역 8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받고 대학에서 제적당했다.

석방 이후에는 강제로 군에 징집돼 특수전사령부 예하 제1공수특전여단 제3대대에 배치됐다. 1978년 2월 31개월 만기 제대했으며 1979년 초 사법고시 1차에 합격했다. 1980년 복학 이후에도 민주화 운동을 계속해 그해 4월 학내 시위 와중에 사법고시 2차를 치렀다. 그러다 1980년 5․17 확대 계엄 조치가 발동되면서 실시된 예비 검속으로 체포됐고, 청량리구치소 수감 중 제22회 사법시험 최종 합격 소식을 받게 된다. 석방 후 사법연수원에 들어간 문 대통령은 캠퍼스커플이었던 김정숙 여사와 7년 연애 끝에 결혼해 준용·다혜 씨 등 슬하에 1남1녀를 두었다.









■ 인권변호사 시절

문 대통령은 1982년 사법연수원을 차석으로 수료하고 연수원 내 최고상인 법무부장관상도 수상했다. 그는 판사를 지망했지만 유신 반대 시위 전력으로 임용이 좌절되자 변호사의 길을 걷기로 하고 고향 부산으로 내려왔다. 그리고 부산에서 당시 변호사였던 노무현 전 대통령을 만나면서 인권변호사의 길을 걷게 된다. 두 사람은 ‘노무현·문재인 합동법률사무소’, ‘법무법인 부산’에서 시국 사건을 도맡으며 부산은 물론 울산·창원·거제 지역을 망라하는 노동·인권변호사로 활약했다.
특히 1987년에는 6월 항쟁의 주역이 된 부산국본(부산민주헌법쟁취 국민운동본부)을 만들어 노 전 대통령이 상임집행위원장, 문 대통령이 상임집행위원을 맡으며 부산 민주화운동을 주도했다. 이후 1988년 노 전 대통령은 13대 총선에 출마해 정치권에 들어섰지만, 문 대통령은 노동문제 변호사 길을 이어갔다.









■ 참여정부 시절

변호사 생활을 하던 문 대통령은 2002년 대선에 출마한 노 전 대통령의 부산 선대본부장을 맡았고, 2003년 참여정부 출범과 함께 민정수석이 됐다. 그러나 당시 치아 10개가 빠지는 등 격무로 인한 건강 악화로 1년 만에 사표를 냈다. 2004년 히말라야 트래킹 도중 노 전 대통령 탄핵소추안 국회 통과 소식을 듣고 곧장 귀국해 변호인단의 간사를 맡았다. 탄핵 재판이 끝나고 2005년 다시 청와대에 들어가 대통령비서실 시민사회수석, 민정수석, 정무특보를 거쳐 참여정부 마지막 대통령비서실장을 지냈다.









■ 19대 국회의원과 대권 도전

참여정부와 임기를 함께 마친 문재인은 경남 양산의 집으로 돌아왔으나, 노무현 대통령이 서거한 이후 정치인으로서의 삶을 시작했다. 그는 노 전 대통령의 서거 이후 장례 절차와 관련한 모든 일을 도맡았으며, 노무현재단 이사장을 역임했다. 이후 그를 향한 정치 참여 요청은 계속됐고 특히 2011년 6월 그의 자서전 <운명>이 베스트셀러로 주목받으면서 그 요청은 더욱 거세졌다.

이에 그는 2011년 말 민주통합당 창당에 참여한 데 이어 2012년 4·11 총선에서 부산 사상구에 출마해 19대 국회의원으로 당선됐다. 그리고 총선 승리 2달 후인 그해 6월, 18대 대통령 선거 출마를 공식 선언했으며 이후 야권 단일후보가 됐다. 그는 2012년 12월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로 나서 야권 후보 역대 최대인 1469만 표(득표율 48%)를 얻었지만 약 100만 표 차이로 박근혜 당시 새누리당 후보에게 패배했다.









■ 당대표와 4&#8228;13 총선

2014년 12월에는 새정치민주연합의 당권 도전을 선언하고 2015년 2월 새정치민주연합 당대표에 당선됐다. 그리고 그해 10월 새정치민주연합은 더불어민주당으로 당명이 바뀐다. 그는 당대표가 된 이후 혁신위원회를 통해 공천 제도를 투명하게 만드는 등 당 혁신을 본격적으로 추진했으나 이 과정에서 친문(친문재인)과 비문(비문재인) 진영 간 극심한 갈등이 일었고, 이는 국민의당 분당(分黨) 사태로 이어졌다.
최대의 위기에 봉착했지만 문 대통령은 대규모 인재 영입과 ‘10만 온라인 당원’을 모으면서 당의 내실을 다녔으며, 당 대표직을 내려놓은 후 백의종군으로 전국을 누비면서 2016년 4·13 총선을 승리로 이끌었다.









■ 대통령 당선

2016년 하반기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순실의 국정농단 사태가 터지면서 문 대통령은 적폐청산의 최적임자로 부각됐다. 그리고 2017년 3월 헌법재판소의 박 전 대통령 탄핵 인용 결정이 내려지면서 5월 조기 대선이 치러지게 됐다. 그는 4월 이재명 성남시장, 안희정 충남도지사, 최성 고양시장 등과의 당내 경선을 거쳐 더불어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선출됐다. 그리고 2017년 5월 9일 치러진 19대 대선에서 41.1%의 득표율(1342만 3784표)로 대한민국 제19대 대통령이 됐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7년 5월 10일 정오 국회의사당 로텐더홀에서 취임선서 행사를 하고 임기 5년의 제19대 대통령에 공식 취임했다. 문 대통령은 취임선서에 이어 ‘국민께 드리는 말씀"을 통해 “역사와 국민 앞에 두렵지만 겸허한 맘으로 대한민국 19대 대통령으로서의 책임과 소명을 다할 것임을 천명한다."고 밝혔다.




<문재인 대통령 약력>

1953. 1. 24. 경남 거제 출생
1971. 경남고등학교 졸업
1972. 경희대 법대 입학
1975. 유신 반대 학내 시위 주도로 구속, 육군 병장(특전사) 군복무
1980. 경희대 법대 졸업, 제22회 사법시험 합격
1981. 김정숙 여사와 결혼(슬하 1남1녀)
1982. 사법연수원 차석 졸업, 노무현 당시 변호사와 합동법률사무소 시작
1995∼2003. 법무법인 부산 대표변호사
2002. 노무현 대통령 후보 부산 선거대책본부장
2003. 대통령비서실 민정수석비서관
2004. 대통령비서실 시민사회수석비서관
2005. 대통령비서실 민정수석비서관
2006. 정무특보
2007. 대통령비서실 비서실장
2010. 사람사는세상 노무현재단 이사장
2012. 제19대 국회의원, 18대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
2015. 새정치민주연합 당대표
2015. 12.∼2016. 1. 더불어민주당 당대표
2017. 5. 대한민국 제19대 대통령 당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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