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에 이성계가 고려를 쿠데타로 무너뜨리고, 새 수도를 찾기 위하여 무학대사에게 수도와 궁궐 터를 알아오라고 시켰습니다. 이렇게 이성계의 명령에 따라서 무학대사는 아무 생각없이 남쪽으로 여행을 떠나다가. 고려시대의 남경이었던 한양(지금의 동대문구)에 도착하게 됩니다. 무학은 마장동 일대를 둘러보다가 "이곳이 궁궐터로 제일 좋겠군" 이라고 마음을 새기는데 갑자기 한 노인이 소를 몰고 지나가면서 "무학이란놈은 꼭 명당이 아닌곳만 찾는구나."라고 하자 무학대사가 깜짝 놀라서 그 노인에게 다가가 엎드리며 절을 하며 "소승이 무학이올시다 어르신께서는 좋은곳을 알고 계시는 모양이신데 이 부족한 제게 알려 주십시오"라고 하자 북동쪽을 가르키면 저기로 10리를 더 가시오 라고 말하자 그 노인은 사라졌다고 한다 (옛날 도선국사의 혼령이란 설이 유력) 그렇게 무학이 가 보니 지금의 경복궁 터가 있었다고 한다. 이제 이성계는 그곳에 궁궐을 세우고 도읍을 세웠다.
즉 왕명을 받은 무학에게 노인이 십리를 더 가라는 말에서 왕십리 (王十里)라는 지명이 붙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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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호천사네츄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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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십리 왕십리제2동(往十里第2洞)은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성동구의 동이다. 예로부터 서울 동부 일대의 중심지로 알려졌던 곳이다. 법정동은 하왕십리동의 일부를 관할하고 있다.
유래 조선시대 초 무학대사는 이성계의 명을 받아 조선의 새 도읍를 찾고 있었는데, 한 노인이 좋은 길로는 가지 않고 굽은 길로만 가는 소를 보고 무학같이 미련하다고 하였다. 그러자 무학대사는 노인에게 어떤 곳으로 도읍이 좋냐고 하였더니 이 곳에서 10 리(약 4 km)만 더 가면 좋은 곳이 있을 것이라고 하였는데, 노인이 무학대사에게 이 말을 해준 곳이 지금의 왕십리동이다.
조선 초, 무학대사가 태조 이성계의 명을 받아 새로운 도읍지를 찾아 전국을 돌아다니던 중에 지금의 한양대 앞을 지나고 있었는데, 북으로 행당산, 서로 매봉산, 동과 남으로 청계천이 흘러 명당으로 보고 지금의 한양대 캠퍼스 쪽에 도읍을 하려고 생각하던 찰나에, 한 노인이 소를 끌고 지나가면서 소에게 "야 이 무학 같이 미련한 소야"라고 하자, 무학이 깜짝 놀라 그 노인에게 가서 "혹시 도읍이 될 만한 곳을 아십니까?"하였더니 노인은 "북서쪽으로 십리를 더 가보시오. 도읍이 될만한 터가 있을 것이오"라고 하자 무학대사가 그 말을 따라 십리를 더 걸어 나온 곳이 지금의 경복궁입니다. 갈 왕(往)에 열 십(十) 거리 단위 리(里)의 한자를 붙여 왕십리라는 지명이 생긴 것이 이때라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