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화와 칼」이라는 제목이 의미하는 바는 그렇게 예의바르고 착하고 겸손하고 고개를 수그리고 있는 일본 사람들 속에 무서운 "칼"이 숨겨져 있다고 하는데 책 내용을 알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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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호천사sel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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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뒷 그림자가 있다. 그것은 세상살이도.. 정치도 마찬가지이며, 민족도 마찬가지이다. 국화와 칼을 보면서 일본이란 민족과 일본 문화의 특성을 국화와 칼이라는 소재로 하여 두가지 극단적인 상징적 표현을 너무나 잘한거 같다. 「국화와 칼」 작품은 우리가 잘 알듯이 일본을 대상으로 쓴 작품이고, 1944년 6월 미 국무부의 위촉으로 루스 베네딕트(1887∼1948)가 집필한 저서로 전후 일본과 일본인을 가장 잘 설명한 상징적인 책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이 책은 저자가 일본에 대한 단순한 기행이나 견문기가 아니고. 문화 인류학이라는 학문적 방법론에 근거해 평균적인 일본인의 행동과 사고의 패턴을 탐구하는 것이다. [국화와 칼]은 베네딕트가 2차대전의 종결을 앞두고 미 국무성 해외전의분석과(海外戰意分析課)에 제출한 "리포트25-일본인의 행동패턴"을 토대로 집필됐다.
--------------------------------------------------------------------- 이 책은 국화(평화)를 사랑하면서도 칼(전쟁)을 숭상하는 일본인의 이중성을 날카롭게 해부했다. 즉, 국화와 칼로 상징되는 극단적 형태의 일본 문화를 다각도로 탐색하고 전쟁 중의 일본인, 메이지유신, 덕의 딜레마, 인정의 세계, 자기 수양, 패전 후의 일본인 등으로 나눠 문화인류학적으로 깊이 있게 탐구하였다." <책표지 글> ----------------------------------------------------------------------- [국화]는 일본의 황실을 상징한다. 우리는 일본을 벚꽃으로 생각하지만 다른 꽃들이 피지 않는 차가운 가을에 홀로 피는 국화는 깨끗하고 청결하고 조용하고 엄숙하고 고귀하다는 생각에서 실은 일본인들은 나라꽃인 벚꽃보다도 국화를 좋아한다고 한다.
[칼]은「국화와 칼」이라는 제목이 의미하는 바는 그렇게 예의바르고 착하고 겸손하고 고개를 수그리고 있는 일본 사람들 속에 무서운 "칼"이 숨겨져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베네딕트는「국화와 칼」이라는 제목을 통해 일본 사람들의 이중적인 성격을 드러냈다. 일본 사람들 스스로도 자신들은 앞에 내세우는 얼굴과 속마음이 다르다는 점을 인정했다. 이 책은 일본 문화의 특성을 [국화와 칼]이라는 두 가지 극단적인 상징으로 표현하고 있는데, 내용은 아름다움을 사랑하며 배우와 예술가를 존경하며 국화를 가꾸는 데 신비로운 기술을 가진 국민이 동시에 칼을 숭배하며 무사에게 최고의 영예를 돌리는 그들의 이해하기 힘든 일본문화를 다양하게 탐구하여, 쟈크데리다의 철학적 해체기법처럼,사실과 픽션의 역사성과 대중문화를 텍스트 분석으로 정리한듯하다.
*국화의 의미 국화는 평화 속에 숨겨진 일본인들의 세련됨이라고 한말이 있다. 일본은 두 의식 체제를 일단 내포하고 있는 민족이다. 사람은 자신만을 위해 세상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더. 큰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가장 먼저 서구 문명을 수용하면서 항상 자신들보다 강한 사람들에게 고개를 숙일 줄 알고 원리 원칙을 따르며, 보다 아름다운 세계를 꿈꾸는 것이 일본인들이다. 그들의 문화와 경제의 뒷받침엔 언제나 배우려고 하는 자세와 조직적인 일사불란한 조직체계와 부드러움이 있다는 것이다.
국화는 부드러움이나 절개도 의미한다. 그것은 일본인의 정신(사무라이)이 함축되어있다. 국화는 평화를 상징한다. 또한 굳은 절개를 상징한다.
*칼의 의미 칼은 물론 전쟁이다. 이 책은 국화(평화)를 사랑하면서도 칼(전쟁)을 숭상하는 일본인의 이중성을 날카롭게 해부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어찌 보면 이것은 이중성이 아닐 수도 있다. 의식의 껍질 속에 그들이 있는 것이다. 심리수준은 행동의 수준 밑에 있다. 심리 수준에서 알아내려는 것은 행동을 지배하고 인도하는 심층 요소가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행동구조에 비해 잠재적인 심리 구조는 더 간단할 것이라 생각하지만 그것은 추리 영역 속에 숨어있다
*작가는 국화와 칼을 소재로 추리를 하면서 …….일본을 해체하기 시작했다. 그들의 일본정신과 군국주의적 침략적 속성은 봉건 지배 체제를 합리화시킨 이데올로기가 바로 무사도 (武士道)의 사무라이 정신이 일본인의정신으로 확산되었을 것이다. 그들의 정신은 패전 후 자급 자족적 봉건 경제 대신 자본주의라는 새로운 물질적 조건 위에 무사도가 접목된 것이다. 일본의 봉건 지배 계급은 서구 열강의 위협에 의해 문호를 개방한 후 급속한 자본주의 발전을 이루었다. 하지만 신흥 부르주아 계급이 시민 혁명을 통해 봉건 지배 계급을 타도하고 자본주의를 확립한 유럽과는 달리, 봉건 지배층이 산업 발전을 주도한 일본에서는 정치적 민주주의가 싹틀 수 없었다. 시민 정부 대신에 천 년의 역사를 가진 천황제가 유지되었으며, 의회는 매우 제한적인 권한밖에 가지지 못했다. 따라서 천황제 근대 국가의 군대는 신식 무기와 함께 봉건적 무사도로 무장하고, 봉건 영주들의 내전 대신에 ‘대 일본 제국과 천황 폐 하’를 위한 대외 침략 전쟁에 동원되었다 일본의 민중은 대부분 민주주의라는 개념조차 인식하지 못하였으며 천황을 신으로 숭배하는 미몽에서 깨어나지 못했다.
2차 대전에서의 패배는 일순간에 모든 것을 뒤바꿔 놓았다. 도오조 히데끼 [東조 英機]를 비롯한 군부 관료 집단은 전쟁 범죄자로 체포되었고 천황은 라디오 방송을 통해 자신이 똑같은 인간임을 시인하게 했다..... 그로 인해 군대와 재벌이 해체되었다. 작가는 각종 통계자료로 책을 채우지 않았다. 일본의 정치, 경제, 군사 따위를 분석하지도 않았다. 고한다. 그녀의 연구대상은 일본의 가정이었다.
----------------------------------------------------------------------------- "사람들은 자신이 몸담고 있는 사회에서 통용되는 관습과 가치관의 영향을 받고 성장한다. 그리고 정치, 경제, 도덕도 결국은 이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습관이나 사고방식의 표현이다." -- 작가가 이러한 전제로 연구시작 -- -----------------------------------------------------------------------------
평범한 일상생활의 습관, 일반적으로 용인된 일체의 신념. 사람들의 연구가 일본의 표면에 머물고 있을 때 그녀는 위와 같이 "당연시"되던 일본 심층에 자리 잡은 "생활양식, 사고방식"을 연구한 것이다. 천황에 대한 충성도, 활복자살,가미카제 특공대도 미국이 자유와 평등을 당연시 여기고 소중히 여기는 미국의 잣대로 보면 일본의 질서와 계층제도를 합당치 못하게 보이지만 도 일본인의 입장에서 보면 자연스럽고 옳은 것이다.
* 결론적으로 우리는 누구보다 일본이 가까운 이웃이다. 일본은 우리와 많은 악연이 없다면 우리도 작가처럼 일본을 이해하고 배울점이 많고 칭찬받아야만하는 민족이다. 그러나 우리는 국화와 칼을 통해 다시 한번 일본을 생각해야할것이다. 군대와 재벌의 해체로 일본은 낡은 대 일본 제국의로 흔적도 없이 사라질 운명이였고 그렇게 목숨을 아끼며 대항하던 그들은 천왕의 한사람의 항복으로 순한 양이 되어 고개를 숙였다. 그러나 일본은 한국 전쟁이 발발한 다음에는 과거 전쟁 범죄자들이 모두 사면되는 뿐 아니라 공직에 추방되었던 전쟁 주모자급 전범들이 모두 공직에 돌아와 정치?경제?군사?문화?교육의 각 분야를 신속하게 장악했다. 해체되었던 재벌 기업들도 재편성되어 살아났다. 경찰 예비대가 창설되었고 1954년에는 자위대가 발족함으로써 일본은 실질적인 재무장 을 갖추었다 미국은 군국주의자, 제국주의자, 국수주의자, 파시스트, 천황제의 광신자들을 동맹자로 선택하여 그들에게 일본의 정치권력을 넘겨주었던 것이다. 여기서 일본 제국주의자들은 부활의 음모를 싹틔우기 시작했다. 국민 세뇌를 위한 천황의 ‘교육 칙어’를 부활시키려 애쓰고, 냉전사상을 국민들 사이에 퍼뜨리는 데 열을 올렸다. 군사 대국의 영광을 재현하려는 자기네의 욕망을 국민적 욕구로 조작해 내기 위해 힘쓴 것이다. 이러한 노력의 결실은 곧바로 나타났다. 미국의 묵시와 간접 협력 하에 독도를 자기들 땅이라고 하고 우리나라를 다시 한번 지배하려는 야욕을 서서히 나타내고 있다. 특히, 저자의 책에 대한 회의는 요즘의 일본을 보면 베네딕트는 감상적 휴머니즘으로 일본인을 지나치게 관대하게 보아 넘김으로써 되풀이 될 역사의 비극을 방지하지 못했다는 의구심을 갖게 하기에 충분하다. 베네딕트는 이 보고서를 통해 궁극적으로 천황 제는 유지시켜야 하며, 일본인들은 야만인이 아니라 평화시에는 긍정적으로 기여할 만한 자질이 충분히 있다는 사실을 주장하고 있다. 근본적으로 휴머니즘에 입각해 베네딕트가 추구했던 평화세계에 대한 희망을 투사해낸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다시 뻔뻔스럽게 교과서를 왜곡해가며 자신들의 범죄를 부인하려 드는 일본을 보면 베네딕트의 생각이 얼마나 옳은 것이었는지 회의적이다. 베네딕트는 이 보고서에서 일본인의 "이리저리 변하는 변덕스러운 행동"을 설명함으로써 "이해 불가능"한 일본인을 인간답게 묘사하는데 성공했다고 한다. 베네딕트가 특히 강조한 것은 인간의 보이는 행동 대부분은 문화적으로 습득된 것이며, 교육에 의해서 개인은 자신의 가치관과 행동을 새로이 획득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그녀는 일본에 대해서 사람들이 보다 넓은 지식으로 편견을 없애고 관대해지면 전후의 새 세계에서 일본은 부흥하고 세계에 공헌하게 될 것이라고 믿었다. 또한 일왕은 일반 국민이나 일본군에게 존경의 대상이었기 때문에 전후 복구기에 좌절 직전의 국민을 하나로 뭉치게 하고, 사회를 진전시키는 상징이 될 것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일본 군국주의를 상징하는 일왕에게 전쟁의 책임을 묻지 않는 것은 연합국이 싸운 목적 자체를 망각하는 것이라는 비판론도 제기됐지만, 베네딕트의 보고서는 이러한 비판론을 잠재우기에 충분했다.
베네딕트의 판단은 결과적으로 절반만 옳다는 평이 있다. 그러나 과거 일본의 침략을 경험한 아시아 각국은 경계심을 늦추지 않고 있다. 역사 교과서 왜곡과 침략을 정당화하는 발언들이 그때마다 중국과 남북한의 맹렬한 비판과 항의에 의해 좌절당한 최근의 사태들이 그것을 입증한다. 일본 제국주의의 앞잡이와 협력자들을 철두철미하게 응징한 북한과 중국의 경우는 말할 나위도 없으며, 심지어 친일 매국노들이 정권을 장악한 우리나라에서 까지도 일본의 군사 대국화를 경계하는 여론은 실로 강력한 것이다. 그들이 상임이사국에 진출하기 위해 세계 2위의 경제력을 바탕으로 상임이사국이 되려고 혈안이 되고 있고 상임국 진출노력을 가속화 하고 있고 쓰나미 피해를 입은 남부아시아 국가들에게 미국보다도 많은 원조를 한 그들의 저의도 우리는 순수하게 받아들일수 없는 입장이다. 이러한 음모가 실현될 경우 가장 먼저 피해를 당할 나라가 인접한 남북한과 중국임은 말할 나위도 없는 일이다
* 일본은 군국주의 회귀 경향과 전쟁범죄에 대한 의도적인 망각을 버리고 베네딕트는 감상적 휴머니즘으로 일본인을 지나치게 관대하게 보아 넘김으로써 되풀이될 역사의 비극을 방지하지 못했다는 의구심이 들지 않게 평화 세계에 기여하고 건강한 일원으로 거듭나기를 그 마음을 배반하지 않게 지금이라도 각성했으면 하는 바램이고, 요즘 일본에서 한류열풍이 일어나고 따라서 일본어를 많이 알고 있다고 하지만, 일본말을 아는 것과 일본 문화를 아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우리는 일본 문화에 대해 많이 알고 또한 정확히 알아야 할것이다.
우리가 일본인을 미워해서도 안되며 배울점이 많다는것은 인정한다. 그러나 우리가 일본에 대해 지나친 과민반응과 열등감이 아니라 왜 일본을 경계해야하는지를 젊은이들에게 알려야하며, 우리 민족은 앞으로도 어떤 나라나, 민족이나 ,정치나, 개인이나 그 뒷그림자를 읽어낼 줄 아는 현명한 민족이 되어 또한 미리 꿰뚫어 장기적으로 대처하는 힘을 길렀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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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론
문화에 대한 정의는 다양하지만, 가장 일반적으로 정의한다면 ‘사회성원으로서 인간이 살아가기 위해 만든 총체적인 생활방식’을 문화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문화에는 생활양식이나 사회구조, 가치나 의미 등이 포함된다. 일본문화라고 했을 때 여기에는 일본인의 행동양식이나 사회관계, 제도 및 조직, 예술, 종교 등이 포함된다.
그럼 일본문화론이란 무엇인가? 에 대하여 「일본인이란 무엇인가」「일본사회란 무었인가」「일본문화의 성격은 어떤 것인가」「세계 속에서 일본의 위치는 어디인가」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제기하고 답해 왔으며, 서구와의 비교차원에서 논해져 왔지만, 여기서는 일본인의 국민성, 베네딕트의 ‘국화와 칼’, 일본인의 근면성, 일본인의 정신적 원류인 무사도, 일본의 천황, 일본경제의 변화와 사회구조 및 생활관계(세계속의 일본의 위치), 일본 역사속에 나타난 문화적 특징 등 몇 가지 요소들을 가지고 접근하면서 오늘날의 일본인과 일본사회, 일본문화를 이해 하는데 한층 접근하고자 한다.
본 론 먼저 일본이라는 나라와 그 문화를 알기 위해서 국민성을 비롯하여 몇 가지 관점에서 서술한다.
1. 먼저 일본인의 국민성의 특징을 4가지로 생각해 보았다. 가. 구미인은 자신의 의지와 상대의 기분이나 입장을 살피고 고려하여 발언하는데 비해 일본인은 상대의 기분이나 입장을 살피고 고려하여 발언하거나 행동하는 경향이 있다. 또 상대방에게도 이러한 행동을 기대한다. 또한 일본인에게는 좋고 나쁨을 확실하게 표현하지 않는 경향이 있는 데 이는 일본인이 동일민족이고 마찰을 피하려는 전통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는 또한 남에게 대한 응석이기도 하다.
나. 일본인이 몇명모이면 나이나 사회적 지위등의 기준에 의해 서로의 서열을 의식하여 이에 따른 행동양식에도 영향을 미친다. 또 일본어는 경어가 상당히 발달되어 있는데 이는 일본인의 상하관계를 중시하는데 의한 것이다.
다. 일본인은 일반적으로 보통 사람과 동떨어진 행동을 취하는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따라서 자신의 행동을 결정하는데에 있어서 상대방이 어떻게 생각할까 등에 신경을 쓰고 많은 영향을 미치는 경우가 있다.
라. 일본인은 인간과 자연과의 조화를 존중한다. 건축이나 정원의 양식에도 자연을 그대로 살려서 소재로 하려고 노력한다. 인간과 자연에 대하여 미국의 여류사회학자인 프로렌스 크록 혼은 "미국이나 소련인은 자연은 인간에 의해 정복되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멕시코 농민은 인간은 자연에 굴복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비해 일본인은 인간은 자연과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논하고 있다.
2. 베네딕트의 〈국화와 칼〉 특히 일본을 알기 위해서는 베네딕트의 〈국화와 칼〉을 읽지 않고서는 일본을 이해할 수 없다고들 한다. 일본인들은 진심은 무엇일까? 〈국화와 칼〉이라는 제목을 통해 일본 사람들의 이중적인 성격을 드러냈다. 일본 사람들 스스로도 자신들은 앞에 내세우는 얼굴과 속마음이 다르다는점을 인정한다. ほんね(本音)라고 하는 것은 겉 다르고 속 다르다는 뜻이다. 한자어 表裏不同을 우리말로 그냔 옮겨논 표현이라고나 할까? 겉과 속 일본어로는 다테마에(建前)와 혼네(本音)이다. 아무리 친한사이라도 여간해서는 드러내지 않는다는 일본인들의 속. 여기서 〈국화와 칼〉이라는 제목이 의미하는 바는 그렇게 예의 바르고 착하고 겸손하고 고개를 수그리고 있는 일본사람들 속에 무서운 칼이 숨겨져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일본과 숙명적인 관계이다. 따라서 일본을 정확히 알아야 한다. 우리가 일본의 지배를 받았기 때문에 일본어를 많이 알고 있다고 하지만 일본말을 아는 것과 일본문화를 아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3. 일본인의 근면성 일본인은 부지런한 민족인 것 같다. 200년이상 논밭 경작을 주로 하는 농사를 계속해 왔다. 일본의 수답경작은 지세상 소규모이어서 소나 말의 유효한 사용이 어렵고 반면에 인력의 투입이 컸다. 따라서 노력을 게을리 하면 수확이 줄어드는 특징이 있었다. 봉건시대에서는 토지에 대한 세금이나 소작로가 높아 농민은 좁은 토지에서 조금이라도 많은 수확을 얻을 필요가 있었다. 또 의복도 주부가 실을 뽑아 찌는 등 거의 자급자족이었다. 이와같이 농민은 열심히 일하지 않으면 자기생활을 해나갈수 없었기 때문에 늘 일하는 습관이 붙었을 것이다. 이 습관은 농민 이외에도 있어 일하는 것 자체에 윤리적인 가치를 인정하는 사회의식도 강하였다. (이점은 프로테스탄트와 비슷하다) 그러나 또 한가지 중요한 것은 메이지유신 후의 사회개혁에 의한 종래의 엄격한 계급제도의 철폐이다. 이에 따라 능력있는 사람은 노력여하에 따라 높은 사회적 지위까지도 올라갈 수 있는 구조로 되었다. 이 때문에 관리, 군인, 회사원들도 노력하여 일하는 기풍이 일반화되었다. 이와같이 열심히 일하는 습관은 일본인의 국민성이 되었으나 반면에 인생을 즐긴다는 점에 대해서는 그다지 좋지 않다 할 수 있다. 최근에는 오로지 일만 하는 것이아니다. 자신의 인생에 충실하려는 사람이 늘고 있다.
4. 일본인의 정신적 원류인 무사도 좀더 일본이라는 나라를 알기 위해서 중요한 또 한가지는 그들의 무사도 정신이라 할 수 있다. 현재의 일본이 강대국이 된 것도 이러한 무사도의 정신에서 나온 것이라 아닌가 생각한다. 무사도를 지배하는 윤리의 하나로 힘을 생각할 수 있다. 그리고 일본의 무사도에 있어서는 힘이라는 것이 어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힘 그 자체가 목적이다. 예를 들면 일본 역사상 가장 검술의 명인이라하는 미야모또 무사시가 검술을 연마할 때 힘을 쌓는 것, 검술을 닦는 것, 그 자체가 목적이었다. 이 때문에 마음의 수양도 어디까지나 힘을 기르기 위한 수단이었을 뿐이다. 바둑을 발명한 것은 중국이었으나 이에 단을 만들고 힘의 강약을 나타낸 것은 일본인이다. 바둑 뿐만 아니라 학생의 수영, 놀이에 있어서도 단을 만들어 힘의 우열을 가린다. 모든 것에 단을 붙인다는 것은 역시 힘 그 자체가 최고라는 생각과 연결되어 있다. 잉카제국은 상당한 고도의 문화를 가졌고 철을 만드는 기술도 있었으나 전쟁 때에는 일체 철을쓰지않고 목제 무기를 사용했다고 한다. 일본의 무사도와는 달리 힘을 부정한 문화였다. 그러나 일본의 무사도의 경우, 자신의 힘을 끝까지 사용 할것을 요구하고 있다. 일본인은 열정도의 힘이 있으면 열모두 사용하나, 잉카의 예에서는 철을 사용하면 보다 잘 죽일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쓰지 않았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힘을 100% 발휘하지 않았다. 이에 브래키를 거는 메카니즘문화가 잉카제국에서는 있엇으나, 일본에는 전혀 없었다. 앨빈토플러가 저서 "미래의 충격"이라는 것이 있다. 여기에 인간의 목을 외과수술로 바꿀수 있다는 부분이 있다. A와B라는 사람이 있어 A는 목윗부분에 건강하고 B는 거구로 목 아랫 부분부터가 건강하였다고 한다면, 둘의 목을 잘라 A의 목을 B의 몸에 붙여 두사람 중 한사람을 살린다는 내용이다. 이 새로운 인간이 A인지 B인지는 상당히 곤란한 문제가 된다. 토플러는 여기에서 이와 같은 외과수술을 제일 먼저 성공하는 과학자는 아마 일본 사람일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결코 일본의 과학기술수준을 높이 평가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만약 이것이 다른 나라 같으면 종교적인 윤리적인 억제를 받아 거기까지 할 수 없었으나 일본인 에게는 그러한 억제감이 없어 이룰 수 있다는 것이다. 여하튼 TV나 영화를 보고 있노라면 일본인의 힘에 대한 숭배에 대한 강도가 느껴진다. TV나 영화에서 힘을 가진 주인공이 대화로서가 아닌 힘으로 상대를 눌러 버리고, 그리고 이 사람이 영웅으 로 사람들에게 추앙받는 장면이 매일 같이 만들어지고 있다. "문답무용"이라는 말이 일본인의 힘 에 대한 숭배를 잘 나타내주고 있을 것이다. 힘의 정의가 되기 쉬운 국민성이다.
5. 일본의 천황 천황은 일본 국가·민족의 아이덴티티의 핵으로 일컬어지며, 일본의 문화와 전통을 상징하는 존재로 간주되어 왔다. 그러나 천황은 처음부터 일본인들의 숭배의 대상이자 통합의 구심점이었던 것은 아니며, 오히려 오랜 역사에 걸쳐 민중과 천황은 서로 무관했다. 19세기 후반에 이르러 비로소 천황은 일본인 인본문화의 상징이자 국민통합의 구심점으로서의 지위를 획득하게 된 것이다.
6. 일본경제의 변화와 사회구조 및 생활관계(세계 속의 일본의 위치) 고도성장기 이후 1980년대에 일본의 해외진출은 보다 본격화되고 경제대국으로서의 위치는 확고한 것이 되어 일본은 세계경제의 중심에 우뚝 서게 되었다. 일본경제는 경제대국화를 바탕으로 1인당 국민소득은 세계 최고수준에 속해 국민소비생활면에서는 구미 여러 나라에 대한 케치 업 국면에서 벗어난 상태이며, OECD가입국 중 국내총생산은 세계2위,1인당 국민소득은 세계3위였다. 1973년 오일쇼크 이후 일본의 고도성장은 막을 내리고 일본경제의 탈공업화 단계로 구조변동이 진전되어 왔다. 이 같은 경제구조의 변동은 고도성장기에 형성된 사회구조 및 일본의 생활과 의식에도 변화를 가져오게 되었다. 물질적인 욕구보다는 생활의 질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고,1980년대에는 과연 일본이 풍요로운 사회인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었다. 소득이 높아졌음에도 불구하고 고도성장기에 형성된 효율성을 추구하는 경쟁사회체제가 변화되지 않아 다른 선진국에 비해 일본인의 생활은 여유가 없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생활의 여유를 확보하는 문제가 대두되기도 했다. 1990년대는 "생활대국론"이 주창되어 최소한 소비 생활면에서는 고급화, 다양화, 첨단화가 급속히 진정되었다. 따라서 AWL(american way of life)에 대한 케치업 단계를 지나 JWL (japanes way of life)구축단계로 접아들었다는 자신감이 전 일본열도에 퍼져 나갔다. 그러나 1991년 이후 버블경제 붕괴와 헤이세이 불황이라 불리는 장기간의 경기침체, 금융불안에 의한 개인 파산 증가. 기업구조조정 여파에 따른 실업률급증, 일본경제사회의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종래의 자신감이 상당부분 상실되고 있다. 일본총리부가 1998년 5월2일 발표한 "사회의식에 대한 여론조사"에서 다수의 일본인이 미래의 생활이 나빠질것으로 응답했다. 향후 일본의 미래를 몇 가지 살펴보면 첫째 사상최고의 실업률을 기록 일본고용안정신화의 붕괴, 종신고용제의 붕괴. 둘째 세계최고의 소 자녀화 고령화 추세. 세째 국제화와 영미식의 개인주의적 가치관과 생활방식이 일본의 전통적 공동체주의, 민족적 단일성, 멸사봉공의 정신, 관민의 협조체제 같은 일본 특유의 문화적 사회적 강점이 사라져 가고 있다고 본다.
7. 일본역사속에 나타난 문화적 특징 일본국민의 미술적, 심미적인 경향 영속적인 문화적 특징이 일본의 전시대를 통해 흐르고 있고, 그것은 다른 나라의 보기보다 강하다는 것이다. 이문화적 특징가운데 하나로서는 일본국민이 사물을 학문적으로 표현하기보다 미술적 심미적으로 표현하는쪽보다 큰관심과 능력을 나타내고 있다는 것을 들 수 있다. 예를 들면 문화의 일대 훙륭기였던 나라시대를 보아도 건축이나 조각, 회화나 시, 그리고 약간 뒤늦은 산문학 등, 심미적인 분위기는 정말 현란하지만, 한편 학문적인 표현쪽은 이에 비해 약간 손색이 있는 듯 생각된다. 이와 같은 것은 중세 일본문화에 대해서도 말할 수 있고, 또한 최근 백년에 걸친 큰 변혁의 시대에도 지적분야보다 오히려 심미적 분야 쪽에 보다 영속적인 것이 만들어진 것 같다. 일본역사를 흐르는 또 하나의 영속적인 문화경향으로 강력한 개인지도자보다 오히려 집단적인 지도형식에 치우치는 경향이 있다. 물론 일본사속에는 쇼토쿠태자라든지 미나모토 요리토모나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같은 인물을 볼수 있는 것은 사실이나, 그러나 다른 여러 나라에서 볼수 있는 영웅적인 지도자의 수에 비하면 일본에는 이런 인물이 적은 편이다. 일본의 특징이 되고 있는 통치형식은 영웅에 의한 지배가 아니라, 오히려 나라시대나 헤이안 시대에 나타난 권력의 분산과 호조막부의 집권 및 연서와 효조슈(가마쿠라와 무로마치막부의 직명)에 의한 정치형태, 또한 에도시대의 막부와번에서 볼수 있는 합의제이다. 또 메이지유신이라는 큰개혁의 시대를 돌아보아도 많은 뛰어난 지도자가 있었으나, 모든 권력을 혼자서 쥐었던 지도자는 나오지 않았고, 가장 최근의 군국주의적인 시기에도 또한 일본의 히틀러나 무솔리니라고 할 수 있는 지도자는 나타나지 않았다. 일본이 가지고 있는 집단적인 지도형식에 대한 경향 즉 서로 타협하고, 책임을 서로 분담하는 특징적인 소질이라고 해도 좋을 것 같은데 이것은 오늘날에는 정말 귀중한 요소로, 이후 문명이 점점 더 복잡해짐에 따라 이러한 협력이나 타협분담이 과거의 단순한 시대보다 한층 필요한 것이아닐까 생각되어 지며, 세계의 대부분의 지역에서 나타났던 전제제도에 비하면 봉건제도 아래에서는 법률적인 의무와 권리가 중시되고 있었으며, 근대의 법적개념에 적응할수 있는 사회의 발달이 얼마간 조장되어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또한 당시의 봉건영주는 토지의 소유와 토지세의 징수에 전념하고 있었기때문에, 상인과 제조업자는 전제적인 정권아래에서 보다 폭넓은 활동 범위와 보장을 받을 수 있었던 것 같으므로, 이 경제활동과 앞서 기술한 법적개념이 서로 어울려 더 발전된 경제제도를 낳아, 근대적인 형태의 경제기구를 향한 첫걸음을 내디딜 수 있었으리라 생각된다. 목표지향적인 윤리관과 봉건제도로 길러진 강한 의무감과 책임감이 어울려, 진취적인 기상으로 가득찬 활동력과 기업정신을 낳았다고 보이는데, 이는 근대유럽과 일본의 큰 특징을 이루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결 론 이상으로 나름대로 일본에 대한 대략적인 것을 서술해 보았다. 지금까지의 정리를 통해서 일본문화론이라고 하는 것은 최근 백년에 걸친 큰 변혁의 시대를 통하여 변해왔음을 볼 수 있으며, 일본문화론에 대하여 심도있게 거론하고 있는 베네딕트의 「국화와 칼」이 오늘날까지 논거의 대상이 되고 있다는 것은 과연 일본문화의 전통론이 있겠느냐는 의구심을 불러 일으키고 있는 것 같다. 또 1990년 이후 버블경제 붕괴와 불황으로 인한 경기침체, 금융불안, 실업률 급증 등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종래의 자신감이 사라져가고 있으며, 국제화와 영미식의 개인주의적 가치관과 생활방식이 일본의 전통적인 공동체주의, 관민의 협조체제같은 일본 특유의 문화적·사회적 강점이 무너지고 있다. 우리는 일본문화의 제한된 틀에서 벗어나 보다 광범위하게 논의가 전개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