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신장 위구르의 역사와 중국의 이해관계, 그리고 미국
기부천사
2022-08-18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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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신장 위구르 자치구역의 대외 관계적 상황과
현실적인 중국의 소수민족 특히 신장 위구르를 대하는 자세는
매우 큰 인권적 문제와 국제적 이해관계에 의하여
인권이 크게 무시되고 있다는 점은 시사 하는 바가 매우 크다고 봅니다.
1, 먼저 위구르족은 동 투르키스탄(신장 위구르)와 서 투르키스탄(카자흐스탄)으로 나뉩니다.
이들 위구르족의 조상은 흉노족에서 이어진 "돌궐족"으로 거슬러 올라간다고 합니다.
7세기를 전후하여 형성 되었던 "돌궐족과 고구려"가 당나라와 대립구도 상황에서 돌궐제국은
고구려와 연합하여 당나라를 상대하기도 하였으나, 당나라에 의하여 돌궐과 고구려는 멸망하게 됩니다.
이후 돌궐제국의 사람들이 서쪽으로 이동하여 일명 5개 "스탄 국가와 아제르바이잔과 터키로
흐터졌으며, 당시 서쪽으로 이동하지 않은 돌궐족이 지금의 중국 위구르 지역에 자리를 잡고 당시
돌궐족을 멸망시킨 당나라를 이슬람인들과 함께 연합하여 맞서게 됩니다.
왜냐하면 당나라의 인접 국에 이슬람계 국가들도 대치하며 전쟁을 했었기 때문에 당시 위구르족으로
서쪽으로 이동하지 않고 있던 위구르족과 이슬람인들이 "탈라스 전투"를 통해서 돌궐의 후손들과
이슬람인들이 연합을 하여 당나라에 승리를 거두면서 "위구르제국"이 들어서게 됩니다.
이 위구르제국은 이슬람교로 개종한 위구르인들이 대부분이었다고 합니다.
이 때의 위구르제국이 현재 중국의 자치구인 "신장위구르와 카자흐스탄 동쪽"지역이라고 보면 됩니다.
그러나 이 위구르 제국은 100년 정도 유지하면서, 카라한/티벳/몽골의 전쟁터로 변하면서 멸망 했고
이후에 "칭기스칸"이 출연 하면서 대 몽골로 통일을 하게 됩니다.
2, 징기스칸의 영광이 끝나고 징기스칸 사후에 몽골이 총 4개의 국가로 나눠지게 되는데
중국의 원나라와 "차카타이 칸국"이라는 위구르 지역에 한국가가 현재의 위구르자치구역과 유사한
지역이라고 합니다.
이 차카타이 칸국은 왕(칸)이 몽골인이지만, 국가의 정치와 교육과 행정을 담당하는 대부분이 위구르인
이었다고 하므로 차카타이 칸국은 사실상 위구르인들과 이슬람화 된 형태의 국가였다고 봐야 합니다.
당시 몽고인이 왕이었지만 그 왕도 이슬람으로 개종을 했다고 합니다.
이 차카타이 칸국은 지속적으로 이슬람화 되어 가면서 이슬람 양식과 사원까지 건축하면서 번성 했고
이후 청나라가 차카타이 칸국을 전쟁을 통하여 점령하게 되었지만 엄청나게 끈질기게 독립 운동을
펼치면서 지금의 신장위구르 자치구역의 시초가 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차카타이 칸국이 청나라의 점령지임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으로 독립운동이 일어나면서 이후
청나라가 "신해혁명"을 겪으면서 공산화가 진행되지 않은 상태의 "중화민국"으로 형성 되었고
이 때에 위구르인들이 "동투르키스탄 공화국"을 1944년에 세우면서 독립국을 선언합니다.
당시 소련은 중국의 "국민당'을 견제하기 위하여 "동투르키스탄 공화국"을 지원하며 중국을 압박했고
이후 중국이 공산화 되면서 급격하게 상황이 반전 되기 시작합니다.
3, 중국의 공산화가 의미하는 바는 소련과 중국이 국경까지 트면서 당시 중국의 마오쩌둥이 "동투르키스탄
공화국"을 소련에게 부탁하여 중국의 영토로 복속시켜 달라는 구애를 했고, 이미 "동투르키스탄 공화국"
지도부가 공산화 된 지도자들이 주류였던 상황에서 그 지도부가 중국의 마오쩌둥과 협의를 하러
비행기를 타고 오다가 비행기가 추락하는 사고로 인하여, 결국 "동투르키스탄 공화국"에 중국의 친좌
관리가 파견되어 중국의 관리를 받게 되게 됩니다.
그러다가 1953년 현 중국 주석인 시진핑의 아버지인 시중쉰과 덩샤오핑은 마오쩌둥의 엄명으로
"동투르크스탄 공화국" 즉 신장위구르 자치구의 자치화를 명하며, 실질적인 중국의 복속 자치구로서
소수민족화 되는 수치를 겪게 됩니다.
그러나 이후에는 미국이 소련의 거대화 되는 견제용 행태로 중국과의 핑퐁외교를 통하여 중국에게
경제와 산업개발적 도움을 주나 중국이 너무 성장하는 상황에 당황하며, 중국 또한 만약을 위하여
당시 견제할 수 있는 보호장치를 마련하기 위해서, 신장위구르 자치구역의 독립을 열망하는 사람들에
대한 이슈화에 돌입 하면서 그들에게 도움을 주기 시작합니다.
그러면서 중국 천안문 사태 이후에 신장위구르 자치구의 독립에 열망하는 위구르족(이슬람화)의 사람들
에게 미국과 일본은 적극적인 망명자들에 대한 도움을 주면서 대대적 "디아스포라(diaspora)를 형성
시키게 하여 중국을 견재하는 방법중 하나의 옵션이 되고 있습니다.
여기서 외교적으로 중국의 신장 위구르 자치구의 독립열망을 이용하여 미국은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활용으로 일본과 함께 적극적으로 이용하는 반면, 북한은 미국이 그러한 이용을 하듯이 자신들도 당할
수 있다는 반미정서를 강화 시키고, 중국은 아프카니스탄의 탈레반이 이슬람이라는 명분으로
신장위구르의 위구르족이 이슬람과 동일한 형제라는 상황에 대하여 탈레반 지도부와 협상을 이어가며
신장위구르 자치구에 감도는 독립의 열망을 강대국이나 주변 국가들이 이용을 하는 상황이라는 것이
핵심입니다.
4, 그렇다고 하여 탈레반의 수뇌부들이 무조건 같은 종족이나 다름 없는 위구르족을 돕는다는 것도
아니며, 위구르 지역의 지하자원과 각종 자원까지도 탐내는 미묘하고 복잡한 관게 속에서 신장 위구르
자치구의 위구르족에 대한 중국의 대대적 수용소 건립으로 인권탄압을 서슴치 않고 있다는 점까지도
미국과 일본은 이용하며 결국 죽어나가고 억지 교육으로 탄압 받는것은 위구르족이라는 점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완전한 독립 공화국으로서 국가의 틀 안에서 국가의 보호를 제대로 받고 살 수 있는 단일민족이
얼마나 행복한 것인지를 잘 알 수 있는 것이며, 강대국들의 이용을 당하는 서러운 자치구 위구르족이
매우 불쌍하다고 생각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