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민
종교 갈등에 대하여 (feat. 통성기도 문화)
진짬뽕좋은수학자
2026-01-02 15:00
조회수 : 44
안녕하세요. 수학과 세상 돌아가는 것에 관심있는 진짬뽕좋은수학자입니다. 오늘은 저의 일생 고민이자 종교가 서로 상이한 집안의 일상적인 고민인 종교 갈등에 대해 이야기 해 보고자합니다.
대한민국에 살면서, 우리는 종교라는 것을 어디에서나 직간접적으로 경험하게 됩니다. 우리가 생활을 할때, 로또를 긁을때, 시험을 볼때 기도하는 예시가 그 일례라고 할 수 있죠. 종교는 우리 삶에 있어 마음의 평온과 안식, 개인의 신념을 강화하는데 필요로 합니다. 그러나 종교가 서로 다른 사람들끼리 만나게 되면 이게 정석이요 도리다. 하고 왈가왈부하게 되면서 갈등을 빚는 경우도 있습니다. 오늘은 그러한 사례와 종교별 사이에 대해 그리고 기독교에서 주로 발생하는 통성기도 문화에 대해 이야기를 진행하려고 합니다.
사례 1) 종교 갈등으로 인한 가정내 싸움 발생
이 사례는 가족 구성원들의 종교가 서로 상이할경우 많이 발생합니다. 저의 가족처럼 말이죠. 예시를 들자면. 홍길동 본인은 종교를 믿지 않으며, 믿지 않기로 신념을 굳게 다짐한 사람입니다. 반면 홍길동의 자식 홍아들은 교회를 다니면서 헌금도 열심히 하고 전도도 열심히 합니다. 홍아들의 종교활동을 홍길동의 관점에서 바라보게 된다면, 홍길동은 홍아들이 교회에 돈을 갖다 바치는구나 라고 생각을 할 것입니다. 그렇게 되어 경제적인 문제까지 엮이게 되면 갈등은 더 커지게 됩니다. 그렇다고 해서 홍아들이 교회를 끊게 된다면 개신교의 경우 교인들의 눈치를 보고 듣고 느끼게 될 것입니다. 결국 홍아들 본인은 딜레마에 시달려 그 사이에서 갈등이 심화되는 것입니다.
사례 2) 직장에서의 혹은 닫힌 사회에서의 종교 차별
이 사례는 주로 같은 종교에 대해 동질감을 느끼는 데에서 옵니다.(즉, 자문화 중심주의라고 하죠) 예시를 들어, 직장 내 상황입니다. 부장 임꺽정은 개신교(이쪽이 자문화 심합니다.) 신자입니다. 근데 이제 같은 개신교 다니는 일지매가 천주교 신자 A씨랑, 불교 신자 B씨가 징계 및 시말서에 회부될만한 행동을 같이 했을때, 임꺽정은 같은 개신교 신자는 거기에서 빼내고 정작 천주교 신자 A씨와, 불교 신자 B씨를 고발합니다. 즉, 이제 회사에서는 둘은 악마, 야만인이라고 낙인찍히고 사이 좋게 시말서 쓰게 되는 반면 같은 개신교 신자인 일지매는 회사 생활을 편하게 영위하게 되는 것이죠. 거기서부터 갈등이 심화되어 싸움이 발생할 수 있게 됩니다.
각 종교별 사이를 알아보자면 불교랑 천주교는 거리낌 없이 잘 지내는데, 불교랑 개신교, 천주교랑 개신교는 완전한 적대관계 입니다. 저도 15년간 개신교 다닌 사람으로써 이야기하는데, 여름 수련회에서 설교를 하시는데, 세상을 유혹하는 악의 세력 목록을 ppt로 띄워 주셨습니다. 저는 거기에서 천주교라는 그 3음절을 보았습니다. 아예 천주교 교황님부터 시작해서 저를 포함한 천주교 일반 교우들 즉, 신자들까지 죄다 악마로 봅니다. 저는 그것이 당최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불교의 경우 석가모니를 믿는다 우상숭배 프레임을 씌우지 않나… 사실 불교의 정수는 자신의 깨달음에 있습니다. 석가모니 본인도 자신은 신이 아니라고 말씀한 바 있습니다. 그리고 개신교의 경우, 자신의 짝을 만나더라도 교회 다니는 사람, 믿음 좋은 사람을 만나라고 합니다. 무종교나 타종교인 만나도 돼냐고 부모님께 여쭤 본 적이 있으나 술(천주교도 술은 되더랍니다.)이라는 고정관념으로 반려당한 것만 177,980번 째입니다. 필자가 26살 먹었는데도 여자친구 하나 없는 이유기도 합니다. 사실 술 마시면 인사불성이 되는 것은 맞으나, 술 마시고 담배 피우는 사람 중에 착한 사람도 있습니다. 제 친구중 열의 아홉은 술을 마시기도 하고요. 개신교의 금욕 엄수와 술이라는 그 이유 하나때문에 여자친구 사귈 권리까지 배척당하니 화가 나는 겁니다.
이어서 이야기 하자면 결국 독실한 기독교 여친을 사귀게 되었다고 가정 합시다. 그렇게 되면 부흥회에 이리저리 끌려다니게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철야기도회, 사순 시기 토요부흥회 등등등… 여러 부흥회에 끌려다니죠. 왜냐? 여자친구는 앞에서 찬양하거나, 반주하거나, 집회전 경배와 찬양을 인도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토론해야 할 마지막 주제가 나오게 됩니다. 바로 통. 성. 기. 도. 말이죠.
이제 통성기도에 돌입하게 되면 주여 삼창(다니엘 9,19에 근거가 있다고 함.)과 동시에 알 수 없는 언어와 몸짓을 하게 됩니다.(손을 흔든다던가) 만약 개신교 친구를 따라 무종교나 타종교 즉, 개신교 문화를 경험하지 못한 이들이 부흥회에 참석하게 되면 열에 아홉 반은 “무섭다, 기괴하다.” 로 반응합니다. 왜냐, 이리저리 몸을 흔들고 알수 없는 언어를 뱉고 밖에서 봤을땐 정상인 사람이 마치 토사곽란에 걸린 사람 마냥 행동하고 있으니 기괴하다고 문화충격을 받는 이들이 대부분입니다. 저도 개신교 15년 다닌 사람으로써 이야기하건데, 아직도 이해 안되고 적응 안되는게 통성기도입니다. 교회에 자취를 끊었다가 다시 교회를 가 본적도 있습니다. 거기서 통성기도를 하는 모습을 보면서 오랜만에 들으니 문화충격이 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통성기도(천주교 말로 심령기도)는 그 본질되는 근거가 구약 예레미아 33,3에 나와 있다고 합니다. 통성기도는 구약에 근거가 나와 있는데, 통성기도를 향한 지적은 신약에 나옵니다. 즉, 구약의 관습들은 모두 신약이라는 실재들로 대체된 것입니다. 즉, 구약에 나온 이야기는 유대인들 한정 과거 규약이며, 유대인이 아닌 저희 대한민국 사람으로써는 굳이 신경쓰지 않아도 상관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약의 관습에 얽매여 통성기도를 한다는 것 자체가 모순입니다. 저는 통성기도라는 문화는 개신교에서 없어져야 될 문화라고 생각을 합니다.
저도 개신교는 싫지 않습니다. 하지만 통성기도라는 구시대적 문화와 자신의 문화가 중심인 자문화적 중심주의는 저로 하여금 개신교에 대해 거리를 두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개신교라는 지체가 통성기도 문화를 지양하고, 신약에 설명하신 정석을 따르며 문화 상대주의적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더 개선할 수 있음과 동시에 세상으로부터 “좋은 종교”, “나도 가고 싶은 종교”라는 좋은 평가를 받지 않을 수 있지 않을까? 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