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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항구의 노래가 국경을 세 번 넘을 수밖에 없었던 시대의 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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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ician

2025-12-26 15:00

조회수 : 22


🎵 돌아와요 부산항에


한 항구의 노래가 국경을 세 번 넘을 수밖에 없었던 시대의 구조


이 노래는 처음부터 ‘국민가요’가 될 운명이 아니었다.

오히려 지방의 노래, 더 정확히 말하면 부산의 노래였다.

부산은 늘 중앙이 아니었고,

중앙이 아닌 곳에서 태어난 노래는

대개 그 자리에서 소모되고 사라진다.


그런데 이 노래는 달랐다.

부산에서 히트했고,

서울을 통과해 전국으로 퍼졌으며,

마침내 일본 교포 사회에서 다시 살아났다.

이건 음악 산업의 기적이 아니라

이동할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의 동선과 정확히 겹친 결과다.


1. 부산에서 히트했다는 것의 의미


1970년대 부산은 항구도시이자 이별 산업의 중심지였다.

사람이 드나들고, 떠나고, 사라지는 것이 일상이었다.

부산 사람에게 ‘항구’는 낭만이 아니라

생활비와 직결된 공간이었다.


이 노래가 부산에서 먼저 터진 이유는 단순하다.

부산 사람들은 이 노래를

상징으로 듣지 않았다.

현실로 들었다.


누군가는 일본으로 떠났고,

누군가는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부산항은 늘 사람을 삼켰다.

그래서 “돌아와요”라는 말은

희망이 아니라 현실을 거스르는 문장으로 들렸다.


부산의 청중은 이 노래를 듣고 울지 않았다.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수 있지.”

이 무심함이 첫 번째 히트의 조건이었다.


2. 전국을 관통할 수 있었던 이유


이 노래가 서울을 뚫고 전국으로 퍼졌다는 건

당시 한국 사회가

집단적으로 떠나 있는 상태였다는 뜻이다.


1970년대 한국은

농촌에서 도시로,

지방에서 수도권으로,

국내에서 해외로

사람이 계속 이동하던 사회였다.


모두가 어딘가를 떠났고,

모두가 돌아갈 곳을 애매하게 남겨두고 있었다.


이 노래의 문장은 교묘했다.

“지금 돌아오라”고 말하지 않는다.

“언젠가는 돌아올 수 있다”고 암시한다.


이 애매함이

전국을 관통했다.


서울의 청년에게 이 노래는

고향을 떠난 자신의 이야기였고,

광산촌 노동자에게는

언젠가 끝날 고된 노동의 약속이었으며,

군 복무 중인 청년에게는

막연한 복귀의 상징이었다.


이 노래는 특정 집단의 노래가 아니었다.

이동 중인 모든 사람의 노래였다.


3. 그런데 왜 일본 교포 사회에서 다시 히트했는가


여기서 이 노래의 진짜 얼굴이 드러난다.

국내 히트는 예고편에 불과했다.


재일교포 사회는

이 노래를 ‘한국의 히트곡’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들은 이 노래를

자기들 이야기로 오해하지 않았다.

정확히 이해했다.


재일교포에게 ‘부산’은

현실의 귀환지가 아니다.

부산은 출발점이자 정체성의 주소다.


그들은 이미 알고 있었다.

돌아갈 수 없다는 걸.

돌아가도 환영받지 못할 수 있다는 걸.

그래서 이 노래는

그들에게 위로가 아니라

현실을 건드리는 물건이었다.


일본 교포 사회에서 이 노래가 다시 히트한 배경은

명확하다.

1970~80년대 재일교포 사회는

1세대의 노쇠,

2세대의 정체성 혼란,

3세대의 언어 단절이 동시에 진행되던 시기였다.


누구도 이 상황을

정면으로 말해주지 않았다.


이 노래만 빼고.


이 노래는 말한다.

“너는 떠나온 사람이었다.”


이 단순한 문장이

재일교포 사회에서는

충격이었다.


그들은 늘

‘남아 있는 사람’으로만 취급받았기 때문이다.

일본에서는 외국인으로,

한국에서는 부재자로.


이 노래는

그들을 처음으로 이동한 사람으로 불렀다.


그래서 일본의 술집,

교포 밀집 지역의 작은 가게,

카세트 테이프 속에서

이 노래는 다시 살아났다.


대대적으로 불리지 않았다.

행사에서 울려 퍼지지도 않았다.

대신 반복 재생됐다.


히트의 정의가 달랐다.

차트가 아니라

삶의 빈도였다.


4. 이 노래가 시대를 정확히 찔렀던 지점


이 노래는

돌아오라고 강요하지 않는다.

애국을 외치지도 않는다.

눈물도 강요하지 않는다.


그래서 더 잔인하다.


이 노래는 묻지 않는다.

“왜 떠났느냐”

“왜 남았느냐”


대신 이렇게 말한다.

“너는 돌아갈 수 있는 사람이다.”


이 말이 가능한 사회는

이미 많은 사람을 떠나보낸 사회다.


부산에서 히트하고,

전국을 관통하고,

일본 교포 사회에서 다시 히트했다는 사실은

이 노래가 한 국가의 노래가 아니라

한 시대의 노래였다는 증거다.


국경을 넘은 게 아니라

사람의 상태를 따라 이동한 것이다.


그래서 지금 다시 들어도

이 노래는 촌스럽지 않다.

멜로디 때문이 아니다.

여전히 우리는

떠나 있고,

머무르고 있고,

돌아갈 곳을 완전히 정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 노래는 여전히 묻는다.

아니, 묻지 않는다.

그냥 불러둔다.


“돌아와요 부산항에.”


그 문장을

각자의 방식으로 해석하라고

시대는 지금도 우리를 방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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