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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사(山寺)에 관한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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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치상지

2025-12-26 15:00

조회수 :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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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사(山寺) / 박성우

배롱나무 그늘 늘어진 절간

요사 마루엔 노스님이 낮잠에 빠져 있다

흙벽에 삐딱하게 기댄 호미와 괭이는

흙범벅이 된 몸을 건성건성 말리고 있다

코빼기도 없는 고무신이 삐죽

흙 묻은 코빼기를 내미는 절간,

연잎에 엎드린 청개구리만

목탁을 두 개나 들고 예불을 드리고 있다

노스님 몫까지 하느라고

울음주머니 목탁을 불퉁불퉁 두드리고 있다

- 박성우,『자두나무 정류장』(창비, 2011)

낡은 산사 / 도종환

벼랑에 장하게 솟은 느티나무를 끼고 돌자

다스름향 사르는 냄새가 싸아하게 번져왔다

들마루에 머윗잎과 곰취가 눅눅한 몸을

푸른 햇살에 맡기고 누워 있는 걸 보면

멀리 가시진 않은 것 같은데

스님은 불러도 대답이 없다

이 골짜기 들어온 지 쉰네 해라 하면서도

아직 막내아들 걱정을 다 놓지 않은 스님은

속내의 바람에 약초밭을 매곤 했다

다디단 자두꽃 향기만 절 마당 가득하고

앞산엔 산벚나무 환하게 몸을 밝혔다

장끼가 깃을 치며 우짖는 소리에

산 그림자 부르르 몸을 떨었다

- 도종환,『해인으로 가는 길』(문학동네, 2006)

겨울 산사에서 / 이성선

산이 깨어나는 시간에 일어나 앉아

시를 쓸까 좌선을 할까 차를 마실까

별빛 내려와 쓸고 돌아간 도량을 돌까

물소리 올라가 얼어붙은 고요한 하늘 위로

산이 깨어나는 소리 하나만 걸려 있다

이것저것 다 놓아두고 그냥 바라보며

눈 안에 그 모습 하나 고요히 앉혀두자

- 이성선,『내 몸에 우주가 손을 얹었다』(세계사, 2000)

산사 문답 / 도종환

이 비 그치면

또 어디로 가시려나

대답 없이 바라보는 서쪽 하늘로

모란이 툭 소리 없이 지는데

산길 이백리

첩첩 안개 구름에 가려 있고

어느 골짝에서 올라오는 목탁소리인고

추녀 밑에 빗물 듣는 소리

- 도종환,『사람의 마을에 꽃이 진다』(문학동네, 2011)

산사에서 / 이건청

산 너머 바다에 갈까, 바다에 가 개펄에 빠질까, 마애불도 풍경風磬도 그냥 버리고 지금, 이 산을 넘으면 아직도 추운 폐선은 기다리고 있을까. 불면과 이명, 봉투 속 하얀 알약들과 버려진 구두짝, 소주병들은 아직 거기에 그냥 녹슬고 있을까. 산 너머 바다에 갈까, 발목까지, 무릎까지 빠지면서 소금밭에 퍼지는 노을이 될까.

- 이건청,『푸른 말들에 관한 기억』(세계사, 2005)

산사 풍경 / 이종형

저물던 가을 햇살 한 줌

잠시 멈추어 선

절 마당 한 모퉁이

알밤 몇 알 구르다

기어코

목탁 소리 낸다

스님들은 죄다

좌선에 들고

선방 창호문 밖으로 이따금

죽비 소리 푸르게 새어 나왔다

요사채 툇마루에서

저녁 공양 기다리던 동자승 긴 목은

고운 이마에 내려앉은 햇살이 무거워

자꾸만 앞으로 기울어지고

산문에 비낀

가을을 따라온 사내

아는 경문이라고는

나무아미타불이라

부끄러워 머뭇거리는데

일주문 밖에서 서성거리던

억새꽃 몇 무더기

먼저 절 마당에 들어

조용히

오체투지 중이다

- 이종형,『꽃보다 먼저 다녀간 이름들』(삶창,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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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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