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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금(사과)의 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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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ician

2025-12-25 15:00

조회수 : 23

-능금(사과)의 유래 .


능금은 사과의 사촌이자, 말의 기억력이다. 요즘 마트에서 능금을 찾는 사람은 거의 없다. 직원에게 물어보면 눈이 한 번 깜빡인다. “능… 금이요?” 금은방은 저쪽이고, 과일 코너엔 사과만 잔뜩이다. 크고 반짝이고, 스티커까지 붙은 사과들. 스스로 브랜드가 된 과일들 사이에서 능금은 늘 부재중이다.


어릴 적 시골집 마당엔 능금나무가 있었다. 키는 작고 성질은 고집 셌다. 열매는 손바닥보다 작았고, 한 입 베어 물면 얼굴이 저절로 찌푸려졌다. 단맛보다 신맛이 먼저 치고 들어왔다. 그때 어른들은 말했다. “그게 원래 사과 맛이다.” 그 말은 나중에야 이해됐다. 원래라는 말은 대개 불편한 진실을 가리킨다.


능금은 기다림의 과일이었다. 지금 당장 맛있지 않다. 며칠 더 두어야 한다. 서늘한 곳에 묻어두고, 시간을 먹인다. 그러면 어느 순간 신맛이 가라앉고, 단맛이 슬쩍 얼굴을 내민다. 급하게 씹어 삼키면 배탈 나고, 천천히 다루면 약이 된다. 인생 사용설명서 같은 과일이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사과가 달라졌다. 커졌다. 달아졌다. 포장되었다. 이름도 당당해졌다. “사과.” 능금은 뒤로 물러났다. 마치 오래된 별명이 본명에게 자리를 내주는 장면 같았다. 회사에서 “형”으로 불리던 사람이 어느 날부터 “부장님”이 되는 순간처럼. 호칭이 바뀌면 거리도 바뀐다.


능금은 성격이 솔직하다. 속임수가 없다. 설탕을 약속하지 않는다. “나 시다”라고 처음부터 말한다. 반면 요즘 사과는 첫인상이 좋다. 한입 베어 물면 달콤하다. 그런데 가끔, 끝맛이 허전하다. 능금은 끝맛이 남는다. 입안에서 오래 맴돈다. 생각도 같이 남는다. “왜 이렇게 시지?”라는 질문이 따라온다. 질문이 생기면 기억도 남는다.


능금이 시와 노래에 자주 등장하는 이유도 거기 있다. 능금은 설명이 필요하다. 그냥 먹고 끝나는 과일이 아니다. 이야기를 부른다. 능금빛 얼굴은 새빨간 미인이 아니라, 차갑고 단단한 생기를 가진 사람을 뜻한다. 쉽게 웃지 않고, 웃으면 오래 가는 얼굴이다. 능금은 미소보다 침묵에 어울린다.


한번은 도시에서 능금을 구해다 친구에게 줬다. 친구는 씻지도 않고 한 입 베어 물었다가 표정이 무너졌다. “이거 상한 거 아냐?” 나는 말했다. “아니, 이게 원래야.” 그 말에 친구는 다시 한 입을 베어 물었다. 이번엔 천천히. 잠깐 생각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묘하네. 계속 먹게 되네.” 능금은 사람을 교육시킨다. 서두르지 말라고.


능금은 효율의 반대편에 서 있다. 빨리 먹고, 빨리 잊히는 시대에, 능금은 시간을 요구한다. 저장해야 하고, 기다려야 하고, 이해해야 한다. 그래서 시장에서 밀려났다. 효율은 늘 이긴다. 하지만 이긴 쪽이 오래가는 건 아니다. 능금은 패배했지만 사라지지 않았다. 말 속에, 기억 속에 남았다.


요즘 가끔 생각한다. 우리가 너무 사과 같은 삶을 살고 있는 건 아닐까. 보기 좋고, 달콤하고, 바로 소비되는 삶. 반짝이다가 금세 잊히는. 능금 같은 삶은 불편하다. 처음엔 시다. 설명해야 한다. 기다려야 한다. 하지만 끝내 남는다. 사람 입에, 사람 말에.


능금은 과일이 아니라 태도다. 서두르지 않는 태도, 솔직한 맛, 시간을 믿는 고집. 그래서 능금은 아직도 늙지 않았다. 단지 시장에 없을 뿐이다. 숲에는 있다. 기억에는 있다. 그리고 가끔, 이런 칼럼 속에도 슬쩍 굴러들어온다.


달콤함이 넘치는 세상에서, 시큼한 능금 하나쯤은 필요하다. 그래야 우리가 아직 혀를 쓰고 있다는 걸, 시간을 씹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으니까. 능금은 오늘도 말없이 말한다. “천천히 먹어라. 인생은 과일보다 단단하다.”


#캡틴유La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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