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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이란 바다에 아직 파다닥거리고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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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ician

2025-12-22 15:00

조회수 : 19


-‘파다닥, 그 몸부림의 미학


사람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몸부림을 친다.

첫 울음도 따지고 보면 파다닥이다.

산모의 품에서 빠져나오며 “이건 아니잖아요”라는 항의성 퍼포먼스.

인생 최초의 즉흥무용.

그때부터 인간은 우아한 적이 거의 없었다.


우리는 흔히 성공담을 좋아한다.

날아오른 이야기, 한 방에 풀린 인생, 단숨에 건너간 강.

하지만 자세히 보면, 그 강을 건넌 대부분의 인간은

수영 선수가 아니라 물에 빠진 사람이다.

팔을 휘두르고, 발을 차고, 숨을 헐떡이며

폼은 없고, 물은 튀고, 표정은 일그러진 채로.

그게 바로 파다닥이다.


파다닥은 실패의 다른 말이 아니다.

파다닥은 아직 포기하지 않았다는 증거다.


어릴 적 종이학을 접다가 손이 미끄러져

학이 아니라 찌그러진 종이덩어리가 되었을 때,

우리는 그것을 실패작이라 부르지 않았다.

“이건… 실험작이야.”

인생도 대부분 실험작이다.

완성본은 전시관에 있고,

우리는 아직 작업실 바닥에서 종이를 밟고 있다.


요즘 세상은 너무 ‘우아함’을 강요한다.

SNS에는 늘 정제된 삶만 떠다닌다.

아침엔 요가, 점심엔 샐러드, 저녁엔 와인 한 잔.

그 사이에 끼어 있는 건

엑셀 파일과 카드값, 무릎 통증, 새벽 알람이다.

그건 절대 사진에 안 나온다.


실제 삶은 어떤가.

알람을 끄다 핸드폰을 떨어뜨리고,

양말 한 짝을 못 찾아 지각하고,

회의 중엔 웃지만 속으로는

“내가 왜 여기 있지?”를 백 번쯤 되뇌는 상태.

이건 우아함이 아니라

집단적 파다닥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우리는 남의 파다닥은 사랑하면서

내 파다닥은 창피해한다.


드라마 속 주인공이

비 오는 날 넘어지면 “인생 장면”이라 하고,

내가 비 오는 날 넘어지면 “아, 망했다”라고 한다.

같은 넘어짐인데 조명이 다르다.

인생엔 조명 감독이 없다.

그래서 우리는 늘 본방이 아니라 리허설처럼 산다.


몸부림은 미학이다.

왜냐하면 몸부림에는 방향이 있기 때문이다.

가만히 있는 건 중립이지만,

파다닥은 언제나 어딘가를 향한다.

위든 옆이든, 최소한 지금 자리는 아니다.


취업 준비생의 파다닥,

중년의 이직 파다닥,

노년의 “아직 끝난 거 아니야”라는 잔파도.

다 모양은 다르지만 공통점이 있다.

다들 살고 싶어서 움직인다.


물고기가 물 밖에 튀어나와 파다닥거릴 때,

그 모습은 우아하지 않다.

하지만 그건 쇼가 아니라 생존이다.

인간의 파다닥도 그렇다.

보기에 민망해 보여도,

그 안엔 정확한 이유가 있다.

“아직 숨 쉬고 싶다.”


웃긴 건,

인생이 가장 많이 움직이는 시기는

대개 잘 풀릴 때가 아니라

막힐 때라는 사실이다.

잘 풀릴 땐 정지화면이고,

막히면 갑자기 액션 영화가 된다.


몸부림의 미학은

결국 진짜 표정에 있다.

성공한 얼굴은 연습할 수 있지만,

버티는 얼굴은 연출이 안 된다.

그래서 몸부림에는 거짓이 없다.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파다닥거리는 인생은 실패한 인생이 아니다.

아직 물속에 있다는 뜻이다.

이미 말라버린 것보다,

젖어 있는 쪽이 훨씬 살아 있다.


우리는 언젠가

“그땐 참 많이도 파다닥거렸지” 하며 웃을 것이다.

그때 돌아보면,

가장 빛나던 순간은

가장 꼴사납던 장면일 가능성이 크다.


그러니 오늘도 조금 파다닥거리자.

팔이 짧아도, 방향이 틀려도 괜찮다.

중요한 건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 하나다.


우아하지 않아도 된다.

아름답지 않아도 된다.

지금은 예술 작품이 아니라

살아 있는 과정이니까.


파다닥.

그 소리는 실패의 효과음이 아니라

인생이 아직 재생 중이라는 신호다.


나는 오늘도“파다닥”거린다.

언젠가는 날개가 돋고 힘차게 창공을 날기를 꿈꾸며….

#캡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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