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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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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치상지

2025-10-02 15:00

조회수 : 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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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달 / 김주완

엄지와 검지로 가를 꼭꼭 눌러

중년의 어머니는

둥글게 둥글게 송편을 빚었다

송편 한가운데

검지와 중지 끝을 꼬옥 눌러

가지런한 분화구를 만들었다

바람 피해 의탁할 수 있는

안온한 둥지,

어머니 이승 뜨시고

그 송편 보얗게

밤하늘에 떴다,

밤길 넘어질라 밝히고 있다

- 김주완,『그늘의 정체』(문학의전당, 2014)

秋夕달 / 정희성

어제는 시래기깃국에서

달을 건져내며 울었다

밤새 수저로 떠낸 달이

떠내도 떠내도 남아 있다

광한전도 옥토끼도 보이지 않는

수저에 뜬 맹물달

어쩌면 내 생애 같은

국물을 한 숟갈 떠 들고

나는 낯선 내 얼굴을 들여다본다

보아도 보아도

숟갈을 든 채 잠든

자식의 얼굴에 달은 보이지 않고

빈 사발에 한 그릇

달이 지고 있다

- 정희성,『저문 강에 삽을 씻고』(창비, 1978)

추석달 / 손택수

스무살 무렵 나 안마시술소에서 일할 때, 현관 보이로 어서 옵쇼, 손님들 구두닦이로 밥 먹고 살 때

맹인 안마사들도 아가씨들도 다 비번을 내서 고향에 가고, 그날은 나와 새로 온 김양 누나만 가게를 지키고 있었는데

이런 날도 손님이 있겠어 누나 간판불 끄고 탕수육이나 시켜먹자, 그렇게 재차 졸라대고만 있었는데

그 말이 무슨 화근이라도 되었던가 그날따라 웬 손님이 그렇게나 많았는지, 상한 구두코에 광을 내는 동안 퉤, 퉤 신세 한탄을 하며 구두를 닦는 동안

누나는 술 취한 사내들을 혼자서 다 받아내었습니다 전표에 찍힌 스물셋 어디로도 귀향하지 못한 철새들을 하룻밤에 혼자서 다 받아주었습니다

날이 샜을 무렵엔 비틀비틀 분화장 범벅이 된 얼굴로 내 어깨에 기대어 흐느껴 울던 추석달

- 손택수,『목련 전차』(창비, 2006)

추석달을 보며 / 문정희

그대 안에는

아무래도 옛날 우리 어머니가

장독대에 떠놓았던 정한수 속의

그 맑은 신이 살고 있나 보다.

지난 여름 모진 홍수와

지난 봄의 온갖 가시덤불 속에서도

솔 향내 푸르게 배인 송편으로

떠올랐구나.

사발마다 가득히 채운 향기

손바닥이 닳도록

빌고 또 빌던 말씀

참으로 옥양목같이 희고 맑은

우리들의 살결로 살아났구나.

모든 산맥이 조용히 힘줄을 세우는

오늘은 한가윗날.

헤어져 그리운 얼굴들 곁으로

가을처럼 곱게 다가서고 싶다.

가혹한 짐승의 소리로

녹슨 양철처럼 구겨 버린

북쪽의 달, 남쪽의 달

이제는 제발

크고 둥근 하나로 띄워 놓고

나의 추석달은

백동전같이 눈부신 이마를 번쩍이며

밤 깊도록 그리운 얘기를 나누고 싶다.

- 문정희,『별이 뜨면 슬픔도 향기롭다』(미학사, 1992)

한가위의 달 / 김명인

오늘이 추석이라는데 한나절을 보내고

명절이 아니라서 시차조차 건너뛴

아이들에게서 카톡으로 안부를 전해 받는다

네 식구가 나란히 화면 속에 둘러앉아

먼 나라 한 늙은이를 문안한다, 혼자라서

몇 마디 못 건네고 말이 끊긴다

이런 외마디에도 마음이 담기긴 할까?

거긴 어법이 분명하니 빈자리가 없을 테지

티브이 속은 각료 임명을 두고 한창

입씨름이 왕성하지만 가슴에 닿지 않는

치세란 각축으로 여겨질 뿐,

주변이 시시한 건 의심이 많아진 탓?

달이 창문을 젖히고 떠올라

모과나무에 한가위 두레상을 벌려놓는다

자랄 때는 여럿이었는데 둘러보면

둘레조차 막막한 막바지 보름달이여

집사람은 외출에서 늦어 저녁 끼니까지 걸렀는데

방아 찧던 옥토끼 그 신화가 사라진 달은

도무지 절편의 부드러움을 모르네, 한 그득

다만 담아서 거저 내밀 뿐,

서로가 서로에게 육박하던 한가위가 새삼스럽다

추석이여, 둥근 보름이여,

사무쳐도 와닿지 않는 비명들은

어떤 곡절로 이어놓으려는지

적막 한 짐 잔뜩 지고

달빛은 기를 쓰며 오고 있구나!

- 월간 『시인동네』 2020년 2월호

달 때문에 / 고증식

추석날 밤

고향 집 마당에 앉아

오래전의 그 둥근달 보네

달빛 동동주 한 잔에

발그레 물든 아내가

꿈결처럼 풀어놓은 한 마디

지금 같으면

당신이 무슨 짓을 해도

다 용서할 수 있을 것 같아

울컥,

하마터면

다 털어놓을 뻔 했네

- 고증식,『하루만 더』(도서출판 애지,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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