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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극기에 관한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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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치상지

2025-08-08 15:00

조회수 : 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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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을 훔치다 / 박후식

산골 운동장에 태극기 나부끼고

늦도록 아이들 너덧이 남아

엎치락뒤치락 영락없는 축구를 하고 있다

우리 저맘때도 그랬지

어스름토록 태극기 나부꼈지

커서 보니 아파트 높은

암벽에 태극기 하나 매달려 있다

친구도 없이 혼자 베란다 밖에 나와 손을 흔드는

그 아스라함이 너무 위태롭고 씁쓸하다

다들 어디 갔을까

암벽을 흐르는 독백이 너무 차다

- 박후식,『변경에 핀 풀꽃』(시인동네, 2017)

태극기를 달면서 / 정일근

하염없이 밀려오는 이 슬픔을

그대는 무엇이라 이름하겠는가 시인이여

밤을 새워 그대의 시를 읽다 맞이한 새벽

숙직을 마친 새벽 미명 속으로

홀로 태극기를 달면

경건해야 할 마음을 밀치며

먼저 와 펄럭이는 깊은 슬픔의 힘살들

뜨거워져오는 눈시울을 털며

농성을 풀고 돌아가는 어둠 속으로

북으로 북으로 아득히 달려가는

산맥들을 본다

지금 이 시간 그리운 그 땅에도 태극기를 달며

모든 산맥들을 남으로 남으로 달려 보내며

눈물짓는 한 사내가 살고 있으리라

황토령 참두령 덕은봉을 지나

마등령 보다산 하항령을 넘어

요동 혜산진 무산 회령을 건너

그리운 그 산 아래 그 강물이여

참으로 그리운 우리 사람들이여

숙직을 마친 새벽 미명 속으로

홀로 태극기를 달며 시인이여

아직 아이들이 등교하지 않은 운동장 가득

잊혀진 옛 땅의 이름을 목청 높여 부른다

조국으로 가는 모든 길들을 불러 깨운다

- 정일근,『바다가 보이는 교실』(창작과비평사, 1987)

대문에 태극기를 달고 싶은 날 / 강인한

포켓이 많은 옷을

처음 입었을 때

나는 행복했지.

포켓에 가득가득 채울 만큼의

딱지도 보물도 없으면서

그때 나는 일곱 살이었네.

서랍이 많이 달린 책상을

내 것으로 물려받았을 때

나는 행복했지.

감춰야 할 비밀도 애인도 별로 없으면서

그때 나는 스물일곱 살이었네.

그리고 다시 십 년도 지나

방이 많은 집을 한 채

우리 집으로 처음 가졌을 때

나는 행복했지.

그 첫번째의 집들이 날을 나는 지금도 기억해

태극기를 대문에 달고 싶을 만큼

철없이 행복했지.

그때 나는 쓸쓸히 중년을 넘고 있었네.

- 강인한,『당신의 연애는 몇 시인가요』(문예바다, 2021)

브레이크 타임 / 마경덕

그 많던 태극기는 어디로 갔나

내 어릴 적

아버지는 낡은 국기함을 열고 맨 먼저 대문 옆에 삼일절을 꽂았다

그때마다 근엄한 표정으로,

비밀문서를 품은 독립투사의 표정이 저랬을까

태극기를 꽂고 돌아서면 그제야 새벽이 어둑한 골목을 들어서는 것이었다

옆집 윗집 아랫집 대문 옆에 국경일이 하나씩 꽂힌 후

아침밥을 짓는 연기도 굴뚝을 타고 올랐다

종일 바람에 펄럭거리던 동네

깃발을 바라보면 무언지 모를 설렘이 있었다

길거리에 애국가가 울려 퍼지면

걸음을 멈추고

오른손을 가슴에 얹고 차렷!

국기에 대한 맹세는 국기에 대한 예의였다

우리는 국기를 하늘이라고 배웠다

태극기 그려볼 사람?

아무도 손을 들지 않는다

아이들은 정직하다

집집마다 장롱 서랍에 살던 태극기들

불현듯, 광장을 뒤덮은 태극기 물결도 사라졌다

허공에 지친 바람도, 바람에 지친 허공도

모두 쉬고 있다

- 계간『작가들』2021년 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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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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