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예
눈물에 관한 시
흑치상지
2025-08-01 15:00
조회수 : 42
눈물 / 박영근
한강 다리 막 건너가는 전철에
강물을 바라보는
웬 비구니 스님이
물빛엔 듯
햇살엔 듯
얼굴에 미소 한볼 건져올리는데
내 마음에
알 수도 없는 곳에서
눈물이 솟는데
내 안에도
나도 몰래
나를 키우고
나를 살리는 것 있다는데
나 태어나기 전에도
죽은 후에도
애틋한 노을 너머
바람 불고
강물 흐르고
꽃 피는 나무에
물고기들 뛰어오르고
애기풀들 제 맑은 눈물로 피어나는 속에
내가 있다는데
전철을 나와
지하도 어둑한 계단에
동전 하나
걷어차고
저를 밟고 지나간 발길도 잊었다는 듯
구석에서 먼지를 쓰고 있는데
슬픔도 없이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는데
- 박영근,『지금도 그 별은 눈뜨는가』(창비, 1997)
헛 눈물 / 신달자
슬픔의 이슬도 아니다
아픔의 진물도 아니다
한순간 주르르 흐르는 한줄기 허수아비 눈물
내 나이 돼 봐라
진 곳은 마르고 마른 곳은 젖느니
저 아래 출렁거리던 강물 다 마르고
보송보송 반짝이던 두 눈은 짓무르는데
울렁거리던 암내조차 완전 가신
어둑어둑 어둠 깔리고 저녁놀 발등 퍼질 때
소금기조차 바짝 마른 눈물 한줄기
너 뭐냐?
- 신달자,『살 흐르다』(민음사, 2014)
눈물 / 김용택
너 없이도 가을은 오고
너 없이도 가을이 가는구나.
돌아누우면 멀리
뜨는 달
사랑은
그렁그렁한
한 방울 환한
하늘의
눈물이구나.
- 김용택,『속눈썹』(마음산책, 2011)
아내의 눈물 / 최서림
몸집보다 더 큰 것이 눈물 집인가.
에스프레소가 쓰다고 한들 인생만큼 쓸까.
반백을 넘어가는 내 아내
쓸개 같은 삶보다 더 쓸까.
모래폭풍 이는 사막 같은 세상,
아내의 작은 몸속에
이렇게 많은 눈물이 들어차 있을 줄이야,
폐차 처분된 내 인생을 살려낸 아내의 눈물은
몸을 채우고도 흘러넘친다.
몸속에 소금 산이 들어앉아 있는 아내의 눈물은
여자만汝自灣 바닷물보다 짜다.
쏟아낼수록 마음 밭이 개펄처럼 넓어진다.
아내 가계에 줄기차게 내려온 눈물의 유전인자,
그 눈물로 메마른 내 인생에 물을 대주고 있다.
- 최서림,『시인의 재산』(지혜, 2018)
고래의 눈물 / 이면우
땅으로 올라온 고래가 바다로 되돌아간 까닭은 채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물속에서 한껏 숨을 참아내는 힘은 수염고래 무성한 수염개수만큼의 세월로 짐작될 뿐이다
다른 별에서 보면 지구는 초록 수구水球, 정말 숨 막히는 기적은 거대한 고래가 물속을 새처럼 둥글게 날며 별 한 바퀴 삥 돌고 때론 물구나무서서 묵직한 고리로 탕 타앙 탕, 수평선 치며 놀다 생각났다는 듯 솟구쳐 분수처럼 숨 뿜어내는 일이다
그러니까 고래는 바다 속 파이프오르간, 그걸 듣는 귀를 가진 사람들이 고래처럼 만든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다닌다
저도 돌며 또 태양 둘레를 도는 초록별 움찔 멈춰 선 201404160850, 북위 34.2181° 동경 125.95° 거기, 가라앉은 배 벽 두들기고 또 두들기던 사람들 304명, 두 팔이 지느러미로 변할 때까지 숨 참고 또 참아야 했다 수염고래 무심한 수염개수만큼의 세월이 단박에, 한꺼번에 그 바다를 뚫고 지나갔다 그 다음,
그들은 모두 고래가 되어 깊은 바다로 헤엄쳐 갔다
- 이면우,『십일월을 만지다』(작은숲출판사, 2016)
눈물에 대하여 / 문태준
어디서 고부라져 있던 몸인지 모르겠다
골목을 돌아나오다 덜컥 누군가를 만난 것 같이
목하 내 얼굴을 턱 아래까지 쓸어내리는 이 큰 손바닥
나는 나에게 너는 너에게
서로서로 차마 무슨 일을 했던가
시절 없이
점점 물렁물렁해져
오늘은 두서가 더 없다
더 좋은 내일이 있다는 말은 못하겠다
- 문태준,『그늘의 발달』(문학과지성사, 2008)
눈물을 위하여 / 고재종
저 오월 맑은 햇살 속
강변의 미루나무로 서고 싶다
미풍 한자락에도 연초록 이파리들
반짝반짝, 한량없는 물살로 파닥이며
저렇듯 굽이굽이, 제 세월의 피를 흐르는
강물의 기인 그림자 드리우고 싶다
그러다 그대 이윽고 강둑에 우뚝 나서
윤기 흐르는 머리칼 치렁치렁 날리며
저 강물 끝으로 고개 드는 그대의
두 눈 가득 살아 글썽이는
그 무슨 슬픔 그 무슨 아름다움을 위해서면
그대의 묵묵한 배경이 되어도 좋다
그대의 등 뒤로 돌아가 가만히 서서
나 또한 강 끝 저 멀리로 눈 드는
멀쑥한 뼈의 미루나무나 되고 싶다
- 고재종,『날랜 사랑』(창작과비평사, 19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