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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력난신을 믿는 그대들에게, 내란을 말하고 귀신을 부르다
sydad
2025-07-25 15:00
조회수 : 49
괴력난신을 믿는 그대들에게, 내란을 말하고 귀신을 부르다
7월의 서울역 앞. 한 미국인이 마이크를 들고 외쳤다.
“윤석열을 석방하라.”
그의 이름은 모스 탄. 한국 이름, 단현명.
트럼프 정부의 국제형사사법대사를 지낸 자. 지금은 극우 음모론의 나팔수가 되어, 이 땅을 밟았다.
그는 말한다. 윤석열은 내란범이 아니고, 오히려 내란을 막은 사람이라고.
그는 외친다. “부정선거가 대한민국을 지배하고 있다.”
그는 주장한다. “계엄령은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정당한 수단이다.”
한 손엔 자유를 들고, 다른 손엔 거짓을 쥔 채.
그는 선지자가 아니라, 유령을 부르는 무당이다.
전한길이라는 이름의 징후
역사 강사였던 그는, 이제 광장의 선동자가 되었다.
‘윤 어게인.’
그가 만든 집회는 더 이상 역사 수업이 아니었다. 그것은 ‘내란의 정당화’였다.
2025년 6월, 그는 조용히 국민의힘에 입당했다.
그리고 외쳤다. “보수의 주인이 한동훈이냐, 전한길이냐.”
그 말은 질문이 아니라 선언이었다.
극우는 이제 언저리가 아니라 중심을 향해 밀고 들어왔다.
계엄령, 부정선거, 윤 대통령의 구속—all fake, all plot.
이제 이 음모들은, 대낮의 정치가 되었다.
국민의힘, 그 이름의 붕괴
그 당은 뒤늦게 자각했다.
김용태는 말했다. “즉각 출당시켜야 한다.”
한동훈은 말했다. “극우정당화를 막아야 한다.”
그러나 국민의힘은 이미 그 이름의 뜻을 잃었다.
‘국민’을 말하면서 ‘내란’을 품었고,
‘힘’을 외치면서 법과 정의를 짓밟았다.
출당이 아니라 영접이었고,
비판이 아니라 합류였다.
‘그 당’은 결국 ‘내란당’의 면모를 숨기지 않았다.
괴력난신은 문턱을 넘은 것이 아니라,
현관을 지나 응접실에 앉았고,
지금은 지도부와 나란히 정강정책을 쓰고 있다.
거짓은 체온에 녹아들었고,
광기는 정체성이 되었다.
그들은 정치를 하는 것이 아니라,
‘내란을 정당화하는 정치’를 하고 있다.
괴력난신은 이제 정당의 교리가 되었고,
내란은 그 당의 새로운 윤리강령이 되었다.
공자의 거부: 괴력난신을 말하지 말라
공자는 『논어』에서 말했다.
“子不語怪力亂神.”
“공자는 괴이한 일, 초인적인 힘, 혼란, 귀신에 대해 말하지 않으셨다.”
왜 그랬을까?
그것은 정치가 마땅히 말해야 할 바가 아니기 때문이다.
정치는 백성을 편안케 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고,
정치는 질서를 지켜야 하며,
정치는 허무맹랑한 음모가 아니라,
무거운 현실을 다루는 것이다.
『국어』는 이렇게 말한다.
“先正其政,而後安其民.”
“정치를 바로잡은 다음에야 백성을 편안하게 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
정치는 괴이한 것에 눈을 돌렸고,
계엄을 합리화하며,
유령 같은 지도자를 석방하라고 외친다.
우리는 유령의 시간이 아니라 사람의 시간에 살아야 한다
괴력난신은 정치를 타락시킨다.
비합리, 비도덕, 비현실.
그것은 사람을 흥분하게 만들지만,
사회는 무너진다.
우리는 지금 이성의 이름으로 물어야 한다.
내란이 무엇이었는가.
누가 그것을 기획했고, 누가 막았는가.
누가 정치였고, 누가 광기였는가.
정치는 다시 이름을 바로잡아야 한다.
정치는 다시 정치를 말해야 한다.
그리고
괴력난신을 믿는 그대들에게,
이제는 말해야 한다.
귀신은 물러가라. 여긴 인간의 사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