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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지 시기의 부정의한 국경선, 100년 뒤 전쟁을 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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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dad

2025-07-25 15:00

조회수 : 32

식민지 시기의 부정의한 국경선, 100년 뒤 전쟁을 낳다


7월 24일, 태국과 캄보디아 국경지대에서 격렬한 무력 충돌이 발생했다. 프레아 비헤아르 사원 인근에서 시작된 이번 교전은 이미 수십 명의 민간인과 군인이 사망하는 등 국지전의 양상을 넘어섰고, 양국 간 외교는 거의 단절 직전이다.


하지만 이 총성의 기원은 놀랍게도 100년도 더 지난 과거에서 비롯된다. 1904년과 1907년, 프랑스가 식민 지배를 정당화하기 위해 ‘지도’라는 도구로 만들어낸 불평등 조약. 그것이 오늘날까지도 생명을 앗아가는 전장의 뿌리가 되고 있다.



“분수령을 기준으로 하자”… 하지만 사원은 캄보디아로


태국(당시 시암)은 19세기 말, 프랑스와 영국이라는 제국주의 양강 사이에서 독립을 유지하기 위해 영토 일부를 포기하는 외교 전략을 선택한다. 프랑스는 캄보디아와 라오스를 보호령으로 만들고, 시암은 메콩강 좌안과 씨엠립·바탐방 등지를 양도하게 된다.


문제는 1907년 프랑스가 작성한 지도였다. 자연적인 국경선, 즉 당그렉 산맥의 분수령을 기준으로 국경을 정하자고 합의했지만, 실제 지도는 분수령보다 동쪽에 있는 프레아 비헤아르 사원을 캄보디아 영토로 표시했다. 태국은 이 지도에 정식 항의하지 않았고, 1962년 국제사법재판소는 “태국은 너무 늦게 이의를 제기했다”며 사원의 소유권을 캄보디아에 인정했다.


법은 끝났지만 감정은 끝나지 않았다.



지도 하나가 남긴 감정의 지뢰밭


사원은 단순한 유적이 아니었다. 크메르 제국의 문화 상징이자 민족 정체성의 중심이었고, 동시에 태국 북동부 주민들에겐 생활 터전이었다. 2008년 캄보디아가 이 사원을 세계문화유산으로 단독 등재하려 하자, 태국 사회는 다시 들끓기 시작했다.


그 뒤로 수차례의 무력 충돌, 대규모 시위, 외교 단절. 그리고 이번 2025년 7월, 무력 충돌은 사상자 수십 명과 피난민 10만 명이라는 참혹한 결과를 낳았다.


100년 전 강대국이 펜 끝으로 그은 선. 그리고 그 선이 남긴 기억과 분노가 아직도 피를 흘리게 하고 있다.



우리는 이 질문을 던져야 한다


도대체 어디까지가 한 나라의 땅인가? 국경은 지형으로 정해지는가, 문화로 정해지는가, 아니면 외세의 문서로 정해지는가?


그리고 가장 중요한 질문.

우리는 21세기에 왜 아직도 20세기의 오류 위에서 싸워야 하는가?


지금 이 순간도 누군가는 백 년 전의 지도를 놓고 생사를 걸고 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분쟁의 뿌리’는 단지 현재의 적대감이 아니라, 지도라는 이름의 식민 통치 기술이 만든 유산이라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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