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화순 운주사 / 와불이 일어날 때
흑치상지
2025-03-13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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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남 화순군 도암면 대초리 천불산(千佛山)에 위치한 사찰이며, 현재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21교구 본사 송광사의 말사이다.
雲住寺 또는 運舟寺라고도 한다.
도선대사가 창건하였다는 설과 운주(雲住)가 세웠다는 설, 마고(麻姑)할미가 세웠다는 설이 전하지만 도선창건설이 가장 유명하다. 현대에야 조계종 소속 사찰이 되었으나, 우리나라에서 운주사 같은 절은 달리 전례가 없으므로 특이하기로 유명하다.
1984년부터 1991년까지 전남대학교 박물관이 박물조사 4번, 학술조사 2번을 실시했지만, 정확한 창건연대와 배경, 창건 주체 등 구체적인 확증을 찾지 못하여 오늘날에도 여전히 제대로 밝혀진 사실이 없는 신비로운 절이다.
2017년 3월 13일 ‘화순 운주사 석불석탑군’이란 이름으로 천불천탑이 유네스코 세계유산 잠정목록에 최종 등재됐다
운주사에서 유명한 것은 천불천탑. 즉 불상 1천 좌와 탑 1천 기이다. 천불천탑이 생긴 유래를 설명하는, 도선대사가 등장하는 전설이 전해 내려온다. 전설에 따르면 도선은 한반도를 배 한 척의 형상으로 보고, 호남에는 영남보다 산이 적어 배가 한쪽으로 기울 것이라 염려했다. 그리하여 배의 균형을 맞추고자 법력을 이용해 하룻밤새에 천불천탑을 쌓았다고 한다. 약간 다른 전설도 하나 있다. 천계의 석공들을 하룻동안 일한다는 조건으로 일을 시켰는데, 도선대사가 법력으로 일봉암에 해가 뜨지 않게 묶어서 하루가 아니라 며칠을 부려먹었다. 그런데 도선대사의 어린 제자가 석공들과 도선 사이를 오가며 심부름을 하기가 귀찮아서 닭 우는 소리를 내자 석공들이 와불을 세우기 전에 하늘나라로 돌아갔다는 설화도 있다.
운주사(運舟寺)란 이름은 풍수상 움직이는 배 모양을 한 땅이라는 데서 비롯되었다. 출토 유물과 기록을 보면 고려 초에 세워졌고 조선 초까지도 절이 계속 이어졌다. 불행히도 16세기 말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을 거치면서 법당을 비롯하여 천불천탑도 크게 훼손되어 폐사가 되었으나, 18세기에 자우(自優) 스님이 절을 재건하였다. 이후 1918년에 신도들에게 시주받아 중건되어 현재에 이른다. 단, 천불천탑만은 복구되지 못했다. 1942년까지는 석불 213좌와 석탑 30기가 있었다고 하나 현재에는 석불 90여좌, 석탑 21기만이 쓸쓸히 남았을 뿐이고 이마저도 모두가 온전한 형태는 아니다. 1980년 6월에 절 주변 일원이 사적 제312호로, 9층석탑(보물 제796호), 석조불감(보물 제797호), 원형 다층석탑(보물 제798호)이 보물로 지정되었다. 이외에 여러 형태의 불상과 석탑 등 10여 개가 시도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현존하는 이 절의 석탑과 석불은 기존의 다른 불교미술과 조각수법이 완전히 다르며 이러한 천불천탑의 양식과 배치를 두고 여러 가지 해석들이 나왔지만 마땅히 이렇다할 정설은 없다. 이름 없는 민중들과 석공들이 오랜 세월에 걸쳐 하나둘씩 축조한 경우라서 애초에 양식과 배치구조를 판단함 자체가 무의미하다는 주장도 있다.
행정구역상 화순군으로 되어있지만, 노령산맥의 영향을 받는 외진 동네에 있어서 주변 도시에서 출발하기엔 꽤 먼곳에 있다.
경내는 주차장에서 약 700m 거리에 절이 있고 거기까지는 평평한 운주골이지만, 주변 산자락에 석탑과 석불이 흩어져있어서 이를 다 둘러보려면 생각보다는 많이 걸어야 하는 편. 거의 100미터 가까이, 그것도 두번 올라갔다 내려와야 해서 은근 체력을 필요로 한다.
운주사 골짜기 서쪽 언덕 위에는 땅에 누워있는 거대한 불상, 와불(臥佛)이 있다. 한 쌍이라 부부와불이라고도 부르며 너비 10m, 길이 12m의 대형 불상이다.
천불천탑과 함께 운주사의 대표적인 유물이며 지표의 암반에 조각되어있다. 왜 이런 식으로 만들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전설에 따르면 도선대사가 하늘에서 석공을 불러 하룻밤새에 불상과 불탑을 각 천 개씩 만들도록 했는데, 석공이 와불을 만들던 중 도선국사 밑에서 수발하던 동자승이 일하기 싫어 닭 우는 소리를 내자 하늘로 돌아가가 미완성으로 끝났다고 한다.
실제로는 불상을 조성하려다 난관이 생겨서 포기한 것으로 추측된다. 와불의 형태를 보면 일반적으로 알려진 와불처럼 가로 누운 형태가 아니라 가부좌를 틀고, 서 있는 형태이다. 그리고 와불과 지면 사이에는 결이 나 있는데 이 결을 따라 암반을 쪼갠 흔적이 발 쪽을 보면 밑에서 보인다. 즉, 원래 계획대로라면 암반의 결을 따라 와불을 쪼개서 일으켜 세우려했던 것이다. 그러나 어깨부분부터 결이 사라지는데 이 부분의 암반이 생각 이상으로 커서 이대로 세우면 불상이 부러지기 때문에 그대로 둔 것으로 보인다. 만약 계획대로 되었다면 운주사 와불은 국내에서 손꼽히는 높이의 돌부처가 되었을 것이다.
운주사 일대의 암석은 단단한 화강암이 아니라 경도가 약한 응회암 종류인데 잘 깨지고 부스러지는 성질을 갖고 있다. 따라서 이 돌로 크기가 큰 일반적인 형태의 불상을 조각하면 언젠가는 훼손됐을 것이다. 실제로 운주사에는 여기저기 벽에 기대어 간신히 서있는 불상이나 탑이 있는데, 대부분 풍화작용을 이기지 못하고 원래의 형상을 잃어버렸다. 따라서 이 돌의 성질을 파악해 이런 형태로 조각했을 것으로 추정해볼 수 있다.
민간설화에 이 와불이 일어나면 미륵이 도래하고 새로운 세상이 열린다는 이야기가 있다. 물론 암반에 새겼기 때문에 일어날 수 없겠지만, 만약 대규모 지진 등으로 강력한 지각변동이 일어난다면 이 와불은 일어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 정도 재해라면 세상이 뒤집혔을테니 그런 의미에서라면 새로운 세상이라 할 수 있다.
출처-나무위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