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예
당신을 알기 전에는 시 없이도 잘 지냈습니다 / 류시화
흑치상지
2025-03-07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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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여행자는
여름 여행자보다 더
자신이 가고 있는 방향을 신뢰한다
차가운 별 아래 얼어붙은 길 걸어
어느 곳으로 나아가든
마침내는 봄에 다다를 것임을 알기에
어느 별의 가시를 밟고 걸어가든
머지않아 새벽에 이를 것임을 아는
밤의 여행자처럼
그래서 시인은
여름 여행자보다 겨울 여행자에게
낮의 여행자보다 밤의 여행자에게
시를 적어 보낸다
류시화
당신을 알기 전에는 시 없이도 잘 지냈습니다
밤늦게까지 시를 읽었습니다
당신이 그 이유인 것 같아요
고독의 최소 단위는 혼자가 아니라
둘이라는 것을
이제야 깨닫습니다
사랑을 만난 후의 그리움에 비하면
이전의 감정들은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말도
시 아니면 당신에 대해 얘기할 곳이 없어
내 안에서 당신은 은유가 되고
한 번도 밑줄 긋지 않았던 문장이 되고
불면의 행바꿈이 됩니다
당신을 알기 전에는
시 없이도 잘 지냈습니다
당신을 알기 전에는
당신 없이도 잘 지냈습니다